도시바 날개 단 SK하이닉스…글로벌 낸드 2위로 '점프업'

지봉철 기자
입력일 2017-09-20 13:32 수정일 2017-09-20 18:51 발행일 2017-09-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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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도시바(연합)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컨소시엄이 20일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사실상 성공하면서 SK하이닉스는 단숨에 낸드플래시 메모리 업계 순위 2위로 뛰어오르게 됐다. 삼성전자가 앞선 기술력으로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지만 2위 쟁탈전에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이다. 또한 새로운 경쟁자가 나와 치킨게임이 가속화되는 것을 방지했다는 데도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업체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6.7%), 도시바(17.2%), 웨스턴디지털(15.5%), SK하이닉스(11.4%), 마이크론(11.1%), 인텔(7.4%) 등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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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하이닉스, 세계2위 도시바 공동인수…낸드플래시 시장 주도권

우선 이번 도시바메모리 인수로 컨소시엄 참여 회사 중 유일한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SK하이닉스는 D램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낸드플래시로 확장하는 데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를 보존하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일종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8’, 애플의 ‘아이폰X’처럼 최신 스마트폰에서 사진과 동영상 관련 신기술 수요가 늘면서 낸드플래시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지난달 이천 M14공장 2층의 절반가량을 낸드 설비로 채워 7월부터 가동 중이며, 청주공장의 낸드 신규 생산설비인 M15의 완공 시기를 2019년 상반기에서 내년 4분기로 앞당겼다.

결국 D램 시장선 굳건한 2위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선 4위에 불과한 SK하이닉스로선 도시바와 장기적인 협력관계 속에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도시바메모리는 낸드플래시를 최초로 개발한 곳으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STT-M램(스핀주입자화반전메모리) 기술 개발을 2011년부터 도시바와 함께 진행해오고 있다. 자성 변화에 따른 특성을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2015년에는 차세대 노광기술인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NIL) 기술에 대한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지난 4월 “단순히 기업을 돈 주고 산다는 개념이 아니라 협업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한 최태원 SK 회장의 전략이 고스란히 녹아든 말 그대로 최적의 회사인 셈이다.

여기에 대규모 자본으로 무장한 중화권 기업의 낸드플래시 사업 진출을 막는 효과도 얻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조차 부담 요인이다. 실제 이번 도시바메모리 인수에도 참여한 대만 훙하이(폭스콘)는 지난해 샤프 인수 후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TV용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 중단을 발표해 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로서는 애플이라는 대형 고객을 잃고, 중화권의 막강한 경쟁자를 새롭게 맞게 될 위기를 벗어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도시바 인수해도 낸드 2위 싸움은 계속…컨소시엄으로 실익 축소 우려도

다만 일각에선 도시바메모리가 낸드플래시 원천기술업체로 2D 기술력이 높지만 차세대 제품군인 3D 분야에선 충분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췄는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 효과가 천문학적 인수비용에 못 미쳐 낭패를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번 도시바메모리 인수가 2조엔(20조6000억원)은 베인캐피탈과 SK하이닉스가 1조1000억엔(11조1200억원)을, 애플이 4000억엔(4조1000억원)을 담당하고 나머지 금액인 6000억엔(6조1000억원)을 일본 은행들이 출자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SK하이닉스는 D램 분야에선 삼성전자와 경쟁을 벌이면서 치킨게임의 승자 자리에 올라 있지만 낸드플래시 분야에선 아직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매년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낸드플래시 호황이 꺾일 경우, 도시바메모리 인수가 성장의 기회보다는 ‘승자의 저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지봉철 기자 Janus@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