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금융사들, 단속반 가자마자 판 벌려

김희욱 국제전문기자
입력일 2017-06-29 09:59 수정일 2017-06-29 15:52 발행일 2017-06-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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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테스트 전원 합격, 기다렸다는 듯 배당-자사주매입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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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피켓 든 월가 시위대, AP통신

지난 주 연방준비제도(Fed) 스트레스테스트에서 합격판정을 받은 월가 금융사들이 앞다투어 배당과 자사주매입 계획을 내놓고 있다.

현지시간 23일, 미 은행들의 자산건전성을 점검하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33개 주요은행들 모두가 이를 통과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금융위기 이 후 ‘대마불사(大馬不死, Too big to fail)’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월가 금융규제안 ‘프랭크-도드 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 스트레스테스트는 실업률 10%, 증시 5% 급락, 부동산값 30%하락, VIX(공포지수) 70선 등 금융위기에 준하는 혹독한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때 시중은행들의 자산건전성이 과연 이를 견뎌내기에 충분한지를 시험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가상현실 적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유세 때 부터 ‘이제 美 금융시장은 다시 관리감독의 고삐를 늦춰줄 때가 됐다’며 금융규제안 개정 혹은 완화의지를 밝혀왔고 초대 재무장관 스티브 므누신 역시 현재 연 2회 실시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한 해 걸러 한 번’ 즉 2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게 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시간대 교수 앤 아보는 “Fed가 이번 스트레스테스트에서는 좀 더 은행들의 편에서 자본건전성 점검에 관대했던 것 같다”며 트럼프 정부의 규제완화 의지와 Fed의 독립성 사이에서 옐런 의장과 임원들은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번에 합격한 금융기관 가운데 절반 가량은 미리 배당증액과 자사주매입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스트레스테스트에 합격발표만 나오면 즉시 주주들을 위한 ‘돈 잔치’를 열려고 준비했다는 것이다.

당초 그 규모는 약 300억달러(34조2천억원)로 추산됐으나 막상 공개된 월가 금융사들의 자사주 매입계획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가 120억달러, 씨티그룹이 156억달러, JP모간 194억달러로 美 3대 은행의 자사주 매입 규모만으로도 이를 이미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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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W은행지수, 블룸버그 인터넷판 캡쳐

이에 따라 지난 6개월간 '트럼프랠리'를 이끌어 온 금융업종이 트럼프 지지율 하락 여파로 IT에 선두자리를 내주었다가, 최근 다시금 주도업종으로 복귀한 것이 바로 이 스트레스테스트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다.

월가를 대표하는 24개 은행들로 구성된 ‘KBW 은행지수(Bank Index)’는 스트레스테스트 후 일주일간 4% 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김희욱 전문위원 hw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