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IT 업계 '무선 바람' 태풍 되나

김희욱 국제전문기자
입력일 2016-12-12 07:00 수정일 2016-12-12 10:53 발행일 2016-12-12 13면
인쇄아이콘
[김희욱의 UNDERCOVER] 英 서리大 기존 배터리 1000배~10000배 성능 신물질 개발
36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위대한 발명품도 모두 ‘필요성’이라는 동기부여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최근 IT 기기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휴대용’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능을 가진 기기라도 휴대가 불가능하면 그야말로 ‘창고행’이다. 이처럼 휴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또 기본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무선’이다. 전화기는 물론이고 청소기 그리고 컴퓨터까지 요즘은 선이 없는 ‘코드리스(cordless)’가 유행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필요성’은 바로 전원 공급이다. 선이 없는 전자기기를 구동시켜줄 전원은 무엇이 담당할까? 바로 배터리다.

clip20161211135520
슈퍼 커패시터 연구팀, 서리대학교 홈페이지 보도자료

최근 영국 잉글랜드에 위치한 서리대학교(University of Surrey) 연구팀은 기존의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더욱 화제가 됐던 것은 이 배터리 대체물질의 파워가 기존에 비해 1000배에서 최대 1만 배까지 강력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배터리 제조사들은 ‘적당히 강력한’ 성능을 유지해왔다. 너무 동력이 높으면 원가가 많이 드는 동시에 수명이 짧고 또 너무 낮으면 수명이 너무 길어 수익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판단 아래 이들은 그야말로 ‘적당한’ 동력을 가진 배터리를 생산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서리대학교 연구팀이 개발한 배터리 대체물질은 기존 내연기관의 동력을 대체할 수준에까지 이르러 특히 전기차의 획기적인 성능향상에 일조할 것이라는 평이다.

이번 연구를 성공시킨 서리대학교의 브렌든 홀린 박사는 “글로벌 산업환경 전반에 걸쳐 새로운 에너지 물질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많다”고 이번 연구의 동기를 밝혔다. 그는 이번 ‘슈퍼 커패시터(Super capacitor)’ 개발이 그동안 상상의 영역에 머물렀던 ‘신(新)에너지’ 분야의 장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최근 배터리의 수명은 늘어나고 충전시간은 짧아지는 기술발전은 계속 돼 왔다. 그런데 기존 콘센서를 이용한 에너지원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지난 갤럭시 노트7 사태에서 보았듯이 성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열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서리대학교의 슈퍼 커패시터는 전기차 배터리에 최적화된 대체물질로 손꼽히고 있다.

연구팀은 먼저 기존 배터리 기술을 케이스 스터디(사례연구)하는 과정에서 슈퍼 커패시터의 필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배터리의 성능을 맞추기 위해서는 생산비가 너무 많이 들어 ‘대체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 비용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기존 배터리를 제작하는 생산단가로 1000에서 최대 1만 배까지 성능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사실 슈퍼 커패시터의 역사는 블랙박스에서 출발한다. 블랙박스는 1956년 ‘플라이트 데이터 레코더’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 원래 항공기 고도·속도 등의 정보를 마그네틱 테이프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항공기 사고에 대비 사고원인이나 당시 상황 등을 기록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추후 이 기기가 차량용 기록장치로 발전하여 오늘 날 공공교통수단에서부터 자가용까지 널리 쓰이는 블랙박스가 된 것이다.

올 초 마이크로(초소형) 슈퍼 커패시터가 개발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아직 상용화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머지않아 스마트폰에 적용된다면 ‘충전’이라는 불편함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업계의 기대감도 있다.

또한 전력의 수요와 공급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그리고 양방향으로 주고 받는 스마트그리드 기술에 있어 관건은 ‘어떻게 하면 신재생 에너지 전력을 활용하는데 있어 전력의 질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실시간 에너지 공급원을 변환하느냐’에 있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 슈퍼 커패시터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기존의 이차전지나 저장장치를 통해 전력을 저장·공급하다가 돌방상황으로 전력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때 기존의 원자력이나 화력발전 같은 대체전력을 연결할 때까지 몇 초만에 즉시 가동이 가능한 이 슈퍼 커패시터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실생활에 이런 기술이 적용될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대표적으로 전기차의 획기적인 경제성 향상을 들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행중인 전기차의 경우 평균연비가 7km/kwh 로 100km 주행시 충전요금이 4500원 가량 든다. 물론 이 정도의 충전요금도 가솔린 차량대비 30%의 연료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기술이 상용화 된다면 키로와트당 연비가 7000km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1만 5000원 정도 비용이 발생하는 1회 완충으로 무려 35만 km를 운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clip20161211135241
중국 전기버스(AP통신)

이들은 현재 중국에서 운행 중인 전기버스를 예로 들었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최근 중국의 경우 기후변화 협약의 ‘타겟’이 된 후 더더욱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전기버스의 현실이 흥미롭다. 이 차량은 현재 두·세 정거장마다 멈춰서 배터리 충전을 해야 계속 운행이 가능한데 이번 슈퍼 커패시터를 장착할 경우 1회 충전으로 하루 종일 운행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스페인 철도인프라 관리국은 철도 운행 일부에 이 슈퍼 커패시터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전류를 이용해 화학반응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축전지와는 달리 이 슈퍼 커패시터는 전기장에 에너지를 직접 저장해 0.1초에 충방전이 가능하다. 영하 40도~영상 65도까지 거의 모든 환경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서리대학교 연구팀의 다음목표는 바로 ‘소형화’라고 한다. 이럴 경우 스마트폰은 물론 각종 가전제품에 호환이 가능하고 특히 의료기기에 혁신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인체에 이식되는 인공심장박동기를 비롯해서 웨어러블 디바이스(몸에 붙이는 의료기) 등의 배터리 성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경우 재수술이나 심리적 위축 같은 부작용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희욱 국제전문기자 hw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