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달러야, 바보야

김희욱 기자
입력일 2016-11-30 10:46 수정일 2016-11-30 10:56 발행일 2016-11-3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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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정국, 외국인 투자자들 움직인 것 따로 있어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과거 미국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이자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빌 클린턴을 단숨에 ‘대세’로 만들어 준 표현이다.

지난 주 미국의 추수감사절 전후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달러강세의 후퇴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후 ‘트럼프 랠리’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한국증시가 최근 돌아온 외국인 투자자들 덕분에 미국증시 조정에도 선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시작도 끝도 따질 것 없이 바로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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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30일자 컬럼 ‘박근혜 대통령 하야요구에 웰컴!’캡처

물론 국내 언론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실망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난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지만 여의도 금융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백의 종군’을 선언한 어제와 오늘 한국증시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수’로 대응하고 있다. 만일 지난 2주간의 외국인 매도세가 한국의 정정불안을 이유로 아니 핑계로 댔다면 사실 진짜 정치적 불안국면은 이제부터인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나 저렇게 생각해보나 역시 그 답은 ‘달러가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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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달러인덱스·파랑:코스피, 블룸버그 인터넷판

외국인 투자자들은 트럼프 당선 이 후 그야말로 ‘감정적인’ 달러강세 속에서 한국주식을 팔았다. 이것이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리면서 금융시장의 비관론을 자극한 셈이다. 물론 어제 공개된 OECD 경제전망 보고서 한국편에 최순실과 김영란이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주식과 채권을 거세게 매도한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의외로 대답은 단순하다. 달러가치가 급하게 올라가면서 (가계부채 등에)달러차입비중이 많고 그동안 많이 오른 자산을 주로 팔아서 현금화 시켰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순실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머징마켓 펀드의 기준가는 코스피지수보다 낙폭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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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MSCI이머징지수·파랑:코스피, 블룸버그 인터넷판

반면 이 같은 달러강세에 ‘어부지리’를 취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GDP대비 부채비중이 높지만 대부분의 채권을 1금융권이 보유하고 있으며 아베노믹스의 ‘엔저 전략’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꽤나 그럴 듯 하게 포장된 덕분이다.

엔달러환율이 다시 110엔을 넘어간 일본 주식시장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길에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 일본 수출기업들의 환차익 기대감이 이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2주간 지속됐던 달러강세에 ‘일본주식매수-한국주식매도’의 롱숏전략이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 유행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와 같은 달러강세는 12월 Fed(연방준비제도) 금리인상을 전후로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환율이 하락할 때는 수출기업들의 수익악화가 걱정이라고 증시가 약세를 나타내고 이렇게 달러강세로 환율 상승국면에서는 또 외국인 자금이탈 가능성에 속앓이를 해야하는 것이 한국증시의 고질병이다.

그동안 사실상 제로금리 환경하 전세계를 누볐던 ‘달러캐리트레이드’는 이제 일정부분은 본국 송환을 각오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기계적인 자산배분 말고 가치투자 전략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소득이 늘어나 저녁밥상에 반찬이 늘어날 때는 물론이지만 반대의 경우 밥상에서 도저히 빼놓기 힘든 메뉴를 가진 한국기업들이 늘어나면 외국인들도 역시 이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희욱 기자 hw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