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래도 소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방형국 기자
입력일 2016-09-27 18:12 수정일 2016-09-28 09:59 발행일 2016-09-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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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국 사회부동산 부장

한국은행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김영란법이 제정되면 5만원권의 지하경제 유입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고 전망했었다. 김영란법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다. 반면 김영란법의 시행이 접대와 뇌물의 음습한 문화를 더욱 악화시켜 현금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고, 편법을 부추겨 5만원권이 자취를 감출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았었다. 

이 같은 편법을 이미 경험했다. 2004년 시행된 ‘접대비 실명제’가 그것이다. 50만원 이상 접대비의 경우 접대의 목적과 접대 당사자를 기록하도록 하는 접대비 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카드쪼개기’와 같은 편법을 부추기다 결국 2009년 폐지되고 말았다. 김영란법은 5만원권의 행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늘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첫 날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김영란법은 우리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행하던 관행과 습관, 인식까지 광범위하게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행 초기 두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편법과 소통단절이다.

김영란법이 취지는 좋지만 수많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은 김강자법(성매매특별법)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법이 워낙 포괄주의적이다보니 시행 초기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카드쪼개기’와 같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루프홀’(법의 허술한 구멍)을 빠져 나가려는 시도는 적잖을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은 실패한 법이다. 성매매특별법으로 성매매 장소가 고급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을 넘어 오피스텔이나 주택가로 파고드는 등 성매매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하고, 그 수법이 대담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성매매특별법 입법을 주도한 김강자씨도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강자법이 잘 못 됐다”고 자인한 바 있다. 

김영란법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시대든 부정청탁을 필요로 하는 일단의 세력과 금품수수는 있기 마련이다. 김영란법이 있다 해서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클린 공화국’으로 말끔하게 세탁될 것이라고는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일이다. 아마도 부정청탁의 수법은 더 교묘하고, 음습해질 것이며, 탈법 리스크가 있는 만큼 오가는 금품의 크기도 커질 가능성이 더 크다. 이때 신용카드보다 현금이 사용되고, 그것은 5만원권일 것이다. 얼마지나 5만원권의 행방을 찾아 보면 김영란법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지, 아니면 잘 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우려되는 점은 또 하나는 소통단절이다. 김영란법이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없애자는 취지이지, 이해당사자가 만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공직사회는 물론 기업들도 벌써부터 움츠러들고 있다. 자칫 ‘시범케이스’에 걸릴까 아예 이해 당사자를 만나지 말자는 분위기라는 얘기마저 들린다. 정부와 기업 간 대화절벽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경기침체에 저성장, 청년실업과 부의 양극화, 귀족노조의 극에 달한 이기적인 투쟁, 비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 조선 등 일부 산업 구조조정, 만연하는 님비(NIMBY)현상,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공유화를 당연시하는 천민의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한민국의 병(病)은 대화와 소통이 기본이 되어야 치유 가능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고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회장 같은 사람들이 비싼 밥 먹고 대한민국을 보릿고개에서 구했는가. 마찬가지로 공직자나, 기업인, 언론인과 교직원들도 3000~5000원짜리 물국수가 차려진 식탁에서 얼마든지 정책을 얘기할 수 있고, 기업의 투자계획을 그릴 수 있고, 아이의 인성을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영란법이 소통단절의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방형국 사회부동산 부장 bhk@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