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돈 되는 이야기] EU란 ‘보이지 않는 코끼리’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기자
입력일 2016-06-28 15:18 수정일 2016-06-28 15:20 발행일 2016-06-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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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금융중심가인 ‘더 시티’안에 캐넌스트리트라는 역이 있다. 이 역에 내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 탬즈강변 산책로로 들어서다보면 붉은 벽돌건물에 작은 청동현판이 하나 보인다. 이 현판엔 이곳이 13~14세기에 독일 한자동맹의 자치지역이었다고 적혀있다. 당시 이곳의 이름은 스틸야드였다. 독일어로는 슈탈호프. 당시 이곳이 독일인들의 지배지역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 영국은 이곳의 이름을 캐넌스트리트로 바꾸고 그 위에 역을 세웠다. 최근에 와서야 이렇게 작은 현판 하나 달랑 붙여 놨다.

당시 한자동맹은 영국의 경제에 깊이 관여할 만큼 재력이 막강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어떻게든 한자동맹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한자동맹은 요즘의 유럽연합(EU)과 비슷했다. 국가도 아니면서 국가보다 힘이 더 셌다. 도시간의 동맹인데도 국가인 덴마크와 전쟁을 쳐서 이길 정도였다. 요즘 영국은 한자동맹의 간섭을 벗어나고 싶어 하던 때와 비슷한 입장. 지난주 영국의 ‘EU탈퇴’를 놓고 전 세계가 영국을 비난하는 정보를 쏟아낸다.

근데 이쯤에서 영국을 ‘탈퇴’로 몰고 간 EU는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를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 일단 EU에 취재를 하러 가보면 “이 조직은 ‘보이지 않는 코끼리(Invisible Elephant)’이구나”라는 한숨부터 나온다.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연합인데도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책임가진 주체가 없다. 이 코끼리의 다리를 더듬어보면 4개의 ‘기둥’이 있는 듯하다. EU집행위원회, EU이사회, 유럽의회, 유럽중앙은행 등. 근데 이번에 이 4개 EU대표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EU의 책임이나 앞으로의 혁신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영국을 협박하다가 투표결과가 탈퇴로 나오자, “갈 테면 빨리 나가라”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언론들도 브렉시트는 글로벌의식이 결여된 잉글랜드 장년층이 탈퇴를 찬성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30년 전부터 대처총리와 함께 ‘금융빅뱅’을 주도해 전 세계의 돈줄을 런던으로 끌어 모은 주역들이었기 때문. 이들이 바로 시들어가던 런던금융가를 다시 ‘글로벌금융시장‘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런던에 EU의 자금이 많이 몰려서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니다. 중국 인도 아랍 미국의 자금이 몰려오는 바람에 융성한 것이다. 또 다른 코끼리 ‘기둥’ 가운데 하나인 유럽의회를 가보자. 이 의회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다. 국경도시인 이곳은 거리표지판이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되어있는 유일한 곳. 이 의회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그룹은 유럽인민당그룹(EPP)와 사회민주진보연맹(S&D)이다. 이 2개 그룹에 속한 의원은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한다. 영국은 소외되어있다.

또 다른 ‘기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이 중앙은행은 EU기관은 아니지만, 유로를 관리하기 때문에 막강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영국은 유로를 쓰지 않아 이 은행에 관여할 수 없다. 이 중앙은행은 독일의 콧김을 심하게 받는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얼마 전 ‘IMF 위기’를 겪었던 아이슬란드가 EU회원국이었다면, 그렇게 빨리 금융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리스처럼 갖가지 조건을 들이댔다면 그 늪에서 쉽게 빠져나왔을까?

그럼에도 이 ‘보이지 않는 코끼리’인 EU는 영국 등 회원국들에 사법에다 조세, 입법, 경찰, 군사까지 조정하겠다며 콧김을 세차게 내뿜고 있다. 그래서 영국은 이 코끼리가 도버해협을 넘어 다리를 내딛는 건 막아야겠다며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영국은 앞으로 중국 인도 미국 등과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cetuu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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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