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돈 되는 이야기] 일본 극우파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방법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기자
입력일 2016-05-31 14:21 수정일 2016-05-31 14:21 발행일 2016-06-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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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서 기업현장을 취재하다보면 가끔 ‘극우파’를 만난다. 야스쿠니신사를 매번 찾아가는 이들 극우파의 공통점은 ‘자아도취’이다. 이들은 일본인은 본디 한국인과 중국인보다 우수해서 항상 한반도와 중국남부를 보호하고 지원했다는 이론을 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임나일본부’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반도 동남쪽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는데, 한국의 역사가들은 왜 이걸 인정하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필자는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근무하면서 이런 터무니없는 이론을 펼치는 극우파와 마주치면 끝까지 승부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북한 평양의 조그마한 서점에서 놀라운 책을 하나 발견한 이후부터는 언제나 극우파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다.

이 책엔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의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가 확실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임나일본부는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의 빗츄지역에 있었다는 것.

일본의 ‘성잔성씨록’ 등 다양한 문헌과 조사를 통해 분석해낸 이 책의 이름은 ‘고대 일본의 조선계통문벌(조선 사회과학출판사)’이다. 이 책의 내용은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일본본토에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걸 애써 설명을 하는 것보다,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객관적 입장에서 ‘일본서기’의 신라정벌 관련 내용을 잘 따져보면 야마토 왕정의 힘이 가해진 것은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일본열도 안의 신라소국이었다. 한반도 주민들이 일찍이 일본 열도에 진출해, 한국계의 소국들을 세웠다는 걸 확인했다. 이러한 소국들 가운데서 신라소국은 세츠(오사카부), 하리마(효고현), 기비(오카야마현) 일대에 있었다.

야마토 왕정에 의한 서북일본통합을 가장 심하게 방해했던 나라가 신라소국(6세기~7세기중엽)이다. 이는 비젠국(오카야마현 동부)에, 신라소국의 위협을 받던 임나국은 비츄국(오까야마현 서부)일대에, 백제소국은 빈고지방에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보면 야마토가 있는 나라현에서 세토나이카이 연안을 따라가면서 북쪽에서부터 신라소국, 가야소국, 백제소국의 순서로 놓여있었다. 그러니까, 일본서기 응신기 16년 8월초에 기록된 ‘신라정벌’에서, 가야에 머무르고 있던 소쓰히코가 신라 때문에 야마토에 돌아가지 못한 건 쉽게 이해된다. 왜냐하면 임나국에 가있던 소쓰히코가 신라소국이 가로막아서 야마토로 갈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게 한반도였더라면 가야에서 그냥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면 되었으니까.

일본열도 안의 신라소국, 임나소국, 백제소국은 제2신라, 제2가야, 제2백제였다. 그러므로 일부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그 이름을 한반도의 신라, 가야, 백제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라정벌’은 자국 내 신라의 식민지 국가인 ‘신라소국’을 잠시 쳐들어간 것이었다.”

사실 옛날에 누가 누구를 정벌했다는 게 지금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가 발행한 이 책은 정말 일본 극우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에 적합하다. 따져보면 일본에서 살면서도 ‘극우파’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2년에 한 번 쯤은 한·일 역사관계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것 같다. 일본기업과 사업하시는 분들은 어느 날 느닷없이 ‘극우파’의 논리에 곤욕을 치른다. 이럴 땐 ‘오래전 일본 본토에 한국의 식민지가 있었다’는 걸 아느냐고 질문하시길 바란다. 필자의 경험으론 이 주장이 매번 상당한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cetuu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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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