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돈 되는 이야기] 손님이 없을 땐, ‘비사용자 자극법’을 써야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기자
입력일 2016-05-10 07:00 수정일 2016-05-10 07:00 발행일 2016-05-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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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잘하려면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건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손님이 아예 나타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비사용자 자극(Nonuser Stimulation)’이다. 여기서 ‘비사용자’란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카드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만년필회사에서 볼 땐 평생 단 한 번도 만년필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비사용자’에 해당된다.

요즘 들어 만년필은 그야말로 비사용자 그룹이 갈수록 커지는 품목. 비사용자 그룹이 커지는 품목으로는 만년필 이외에도 맞춤양복, 책, 시계, 종이신문, 손수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품목들이 다시 매출을 올리려면 기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하기에 앞서, 비사용자를 ‘자극’하는 게 훨씬 낫다. 지금까지 ‘비사용자 자극법’을 가장 잘 활용해온 것이 ‘파커 만년필’이다.

지난 1987년 12월8일, 미국과 소련의 정상인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워싱턴에서 중단거리 핵미사일(INF) 폐기협정에 서명했다. 이날 서명이야말로 끊임없이 핵무기 개발경쟁을 벌이던 양국이 핵감축에 합의를 한 것.

이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서명을 한 뒤 서로 사인한 만년필을 교환했다. 이때 역사적인 서명을 한 만년필이 다름 아닌 파커 펜. 이 펜은 파커사에서 백악관에 공짜로 제공한 것이다.

퀸엘리자베스호는 총 8만3673t의 호화 여객선이었다. 이 배는 여객선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엔 총 75만 명의 연합군 병사를 노르망디전투 등에 실어 날랐다.

이 배가 1972년 홍콩 앞바다에서 침몰하자 파커사는 이 배의 황동을 구입해 5000개의 만년필을 만들었다. 퀸엘리자베스호의 황동으로 만든 이 파커만년필은 이 배를 타본 사람에겐 자극제가 아닐 수 없었다. 너도 나도 이 만년필을 사려고 경쟁하는 바람에 다시 ‘파커 붐’을 일으켰다.

파커 펜은 학교교사를 하다가 존홀랜드골드펜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조지 파커가 개발한 제품이다. 그는 학생들이 만년필의 잉크가 잘나오지 않아 불만을 터뜨리는 걸 보고, 만년필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잉크가 펜촉 끝까지 공급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1889년 특허를 획득한 그는 1891년 미국 위스콘신 제인스필에서 창업을 했다.

이 후 파커 펜은 1920년 빨간색 만년필을 만들어 색채마케팅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으며 여성용 슬림 펜을 만들어 시장 세분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기업이던 파커사는 경영난으로 영국 뉴헤븐에 있는 지사에게 본사를 넘겨주게 됐다. 이 회사는 1993년 면도기 회사인 질레트에 다시 넘어갔다가, 현재에는 다국적 브랜드기업인 샌포드의 문구사업본부가 운영 중이다.

이 만년필은 세계 역사의 주요 현장을 기록하면서 함께 살았다. 그래서 파커 펜의 브랜드가치는 엄청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비사용자 자극을 잘해오던 파커도 요즘 들어 이 전략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파커의 명망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지금 파커 펜이 벤치마킹을 해야 할 곳은 스위스 시계회사들의 비사용자 자극전략이다. 한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스위스시계회사는 곧 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럼에도 스위스 시계는 다시 일어서서 세계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은 초고급 시계를 내놓아 ‘비사용자’들을 자극한 덕분이다.

사실 눈앞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 손님도 고객이다. 이들이 우리 가게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바로 비사용자 자극인 것이다. 비사용자를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이벤트’와 ‘공짜 제공’이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cetuu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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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