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돈 되는 이야기] 명문 장수기업의 앞면과 뒷면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기자
입력일 2016-04-05 10:38 수정일 2016-04-05 10:38 발행일 2016-04-06 14면
인쇄아이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는 어디일까? 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 교토에 있는 곤고구미(金剛組)이다. 일본 중소기업관련기관들은 이 회사가 세계 최고의 ‘장수기업’이라고 항상 자랑한다.

하지만 이 회사를 3번 취재해본 필자로서는 이 회사에 대한 일본 중소기업기관들의 태도가 좀 의심스럽다고 판단한다.

일단 이 회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을 한번 살펴보자. 이 곤고구미가 설립된 것은 지금부터 1428년 전인 서기 578년이다. 당시 일본의 쇼도쿠(聖德)태자는 교토에 사천왕사를 건립하기 위해 백제 최고의 도목수 3명을 일본으로 초빙했다.

한국엔 이 자료가 없지만, 일본 자료에 따르면 이 3명의 도목수의 이름은 금강, 조수, 영로이다. 이 3명은 쇼도쿠태자의 명에 따라 백제에서 짓던 방식대로 지극 정성 기예 성실을 다해 사천왕사를 지었다. 사천왕사의 건립이 끝나자, 기록엔 없지만 조수와 영로는 백제로 귀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강은 이렇게 혼을 다해 지어놓은 사천왕사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처음 지을 때의 지극성이 소멸될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금강은 교토에 남아 사찰유지사업을 펴는데 온힘을 쏟기로 했다.

이때 금강이 설립한 사업조직이 바로 곤고구미(金剛組)다. 이 곤고구미를 설립한 금강의 본래 이름은 류중광(柳重光)이다. 류중광은 일본에서 ‘금강중광’으로 이름을 바꾸고, 백제 건축정신을 일본에 심는데 몸을 받쳤다.

그의 정신은 건축물을 완벽하게 지어야하고 이 건축물이 처음 지었을 때처럼 지극성과 정밀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배들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연마하게 했다. 사실 이것이 지금 일본의 모노즈쿠리 정신의 시초가 됐다.

필자가 이 회사를 처음 취재하러 간 건 일본 가나가와중소기업재단 선임연구원으로 있을 때다.

교토에 가서 일단 이 회사가 1400여 년 전에 지은 사천왕사를 구경하고, 이 회사를 찾아갔다. 사실 사천왕사는 일본의 고도인 교토에 걸맞은 문화재다. 하지만 그 문화재의 정문을 나와 오른쪽에 있는 곤고구미의 건물을 처음 봤을 때의 실망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계최고의 장수기업. 1400년 이상 ‘금강정신’을 이어온 이 회사의 건물은 적갈색 5층 건물로 그야말로 ‘성냥곽 건물’이었다. 갑자기 취재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2008년 ‘세계최고의 장수기업’이란 제목으로 신문의 한 면을 장식해주기 위해 다시 취재를 하러 갔는데, 이 회사는 취재를 거부했다.

“요즘 회사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몇 달 뒤 이 회사는 1400여년 만에 파산했다. 40대째 사장인 곤고 마사카즈가 파산신청을 하고, 다카마쓰건설에 영업권을 넘겼다. 지금 곤고구미는 다카마쓰그룹으로 넘어가 다시 최고의 사찰건축 및 문화재보수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지금 이 회사는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정밀기술정신은 이어받았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백제정신’은 없어져버렸다. 이제 곤고구미는 기업의 수익성을 추구할 것이다. 이 회사의 오사카공장에 가보면 120명의 목수들이 정성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도 섭섭한 건 수익성보다 백제정신의 ‘전통’을 이어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장수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런 일본에서도 정책 및 금융에서 이렇게 장수기업을 푸대접한다. 장수기업이 그리 많지 않은 한국에서 ‘명문 장수기업’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중소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 29일 공포됐다. 오는 9월부터는 본격적인 지원책이 마련된다. 이 지원책이 일본의 곤고구미처럼 뒷북치는 정책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www.viva100.com

20160329010009053_1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