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권 설정등기, 너무 믿다간 ‘날벼락’

박선옥 기자
입력일 2016-02-03 10:34 수정일 2016-02-03 17:00 발행일 2016-02-0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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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난
전세난 여파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가 줄면서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 전세권설정등기를 고려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세권설정등기가 확정일자에 비해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조언한다.(연합)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에 2년간 세를 산 이 모씨. 계약기간이 다 돼 가도록 집주인한테 연락이 오지 않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요즘같이 전세집 구하기가 어려운 때 종전 계약조건 그대로 2년간 계약이 자동연장되는 묵시적 갱신이 이뤄진 것으로 생각해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전세권을 설정해둔 게 문제가 됐다. 뒤늦게 계약이 끝난 사실을 안 집주인의 계약해지 요구에 그대로 집을 빼야만 했던 것이다.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세난 여파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가 좁혀지면서 전세권 설정등기를 고려하는 임차인들이 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전세권’을 설정해둠으로써 보다 안전하게 전세금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전세권 설정이 확정일자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전세권 설정등기가 세입자에게 불리할 때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계약을 한 임차인은 실거주를 위해 이사를 하면서 동사무소(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고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으면 다음날 0시부터 대항력이 생긴다. 따라서 실거주·전입신고·확정일자 세 가지 요건만 갖춘다면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후순위권리자보다 우선 배당이 가능하다.

전세권 설정등기의 가장 큰 목적이 우선변제권임을 감안할 때 전혀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입신고나 실거주를 할 수 없어 대항력을 갖출 수 없는 때만 설정하면 된다. 우선변제가 목적이라면 굳이 임차인이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전세권 등기를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비용 측면 외 묵시적 갱신 적용에서도 임차인이 손해다. 현행 법에서는 임대차 계약 만기일 6개월 전부터 1개월 사이에 서로 아무 말 없이 지나가면 계약기간이 자동 연장된다. 임차인을 보고하기 위한 제도로, 이를 묵시적 갱신이라 한다.

이때 확정일자를 받은 경우라면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종전과 같은 조건으로 2년을 더 살 수 있다. 하지만 전세권은 얘기가 다르다. 묵시적 갱신이 됐을 때 전전세권과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전세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이 경우 민법 제312조에서는 ‘전세권의 존속기간은 그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313조에서 ‘전세권의 존속기간을 약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상대방에 대하여 전세권의 소멸을 통고할 수 있고 상대방이 이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6월이 경과하면 전세권은 소멸한다’고 하고 있다.

임대인이 나가라는 요구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상관없지만 소멸을 통고한 이상 임차인은 6개월 이내 집을 빼야 하는 것이다. 같은 전세계약을 하고도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보다 불리한 규정이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배당을 받을 때는 임차인의 전세보단 앞선 선순위 설정이 돼 있는 지, 선순위 권리금액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며 “확정일자와 전세권 설정등기에 따라 경매에서 받는 돈이 달라지는 게 아닌 만큼, 순위를 따져보고 전세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옥 기자 pso982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