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에 연초부터 짐 싸는 세입자들 "갈 곳이 없다"

박선옥 기자
입력일 2016-01-13 15:38 수정일 2016-01-13 18:05 발행일 2016-01-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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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연초부터 수도권 전세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 밀집 지역.(연합)
 

경기도 성남에 사는 박경리(33) 씨는 새해 첫 주말 아파트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결혼한 지 2년 밖에 안 된 박 씨는 애초 4년 정도 전세로 더 살면서 돈 좀 모아 내 집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월세 전환을 이유로 재계약을 거부했고, 다른 전셋집도 구할 수가 없게 되자 떠밀리듯 집을 사게 됐다. 

박 씨는 “2년 전에도 전세난이 심했지만 비싸서 그렇지 물건이 아예 없진 않았다”며 “이번에는 정말 매물이 하나도 없어 월세를 살 게 아니라면 매매밖에 선택권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박 씨에게 물건을 소개한 중개업자는 “20년 가까이 중개업소를 운영했는데 봄 이사철도 아니고 연말연초에 이렇게 전세난이 심한 건 처음이다”며 혀를 내둘렀다.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연초부터 수도권 전세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연말연초는 부동산시장에선 전통적인 비수기로 꼽히지만 재건축 이주에 따른 강남발 전세난이 고질화되는 양상이다.

강남4구에서는 지난해 2월 개포주공2단지를 시작으로 개포주공3단지, 고덕주공2단지, 고덕주공3단지, 고덕주공4단지 등 1만 가구 이상이 이주에 들어갔다. 여기에 지난 7일 1970가구 규모의 개포시영아파트가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올해만 약 2만 가구의 이주가 계획돼 있다.

단기간 내 수 만 가구의 이주가 동시에 이뤄지다 보니 이들 지역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포주공1단지가 여유가 있긴 하지만 이곳도 1~2년 내 철거가 예정된 상태다. 이마저도 2년 전 주택형별로 1억원 안팎이던 전셋값이 최고 2억원을 넘겼다.

채은희 개포공인 대표는 “개포1단지도 곧 철거에 들어가지만 교육이나 직장 문제 때문에 반드시 이곳에 남아야 하는 사람들은 전세나 월세로 들어오곤 한다”며 “하지만 이곳을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물건이 없고 시영아파트 전셋값으로는 들어갈 만한 집도 없어 성남·하남이나 강북으로 가는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국내 인구이동’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사한 사람은 65만명으로 시도별로는 경기도가 순유입 8553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기도는 올해 3월부터 순유입 인구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반대로 서울은 1만3610명이 빠져나가 전국 17개시도 가운데 순유출 규모가 가장 컸다.

하지만 강북이나 경기도로 이사를 하는 것도 녹록치는 않다. 이들 지역도 전셋값이 많이 오른 데다, 수요가 몰리면서 물건 자체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 접근성이 좋아 강남 이주수요가 선호하는 과천, 하남, 성남의 경우 지난해 3.3㎡당 평균 전셋값이 200만원 가깝게 상승했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강남4구에서 대규모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2018년까지는 멸실 물량이 공급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전세난이 지속되면서 수도권 외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욱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선옥 기자 pso982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