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콘크리트 아파트, 자연으로 디자인해요"

박선옥 기자
입력일 2016-01-11 07:00 수정일 2016-01-11 07:00 발행일 2016-01-1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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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GS건설 건축설계팀 조경총괄 부장 조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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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철 GS건설 건축설계팀 조경총괄 부장이 답사 얘기를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다리가 있어. 처음에 사람들은 안전하게 건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계속 다리를 걷다 보면 안전하게 건너는 건 당연한 거고, 그 옆으로 꽃과 나무 등 아름다운 풍경이 보고 싶어질거야. 그때 필요한 게 바로 조경이야.” 

건축학도를 꿈꿨던 한 소년을 조경의 길로 이끈 것은 친한 친구 형의 이 한마디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형이라고 해봤자 스무 살 갓 넘은 애일뿐이다. 하지만 진로 선택을 앞둔 고3 수험생에게는 그 형의 한마디가 가슴을 뛰게 했던 모양이다. 형의 조언을 따라 조경학과에 입학한 소년은 지금 조경분야에서 이름 깨나 날리는 기술사가 됐다. GS건설 건축설계팀에서 조경총괄을 맡고 있는 조영철(사진) 부장이 그때 그 소년이다.

◇ 아는 만큼 보인다…주말까지 반납한 조경열정

1973년 서울대·영남대에 처음으로 조경학과가 개설된 이래 조경이란 분야가 국내에 자리 잡은 지 이제 40년이 조금 넘었다. 조영철 부장은 그 역사의 절반이 훨씬 넘는 30여 년을 조경과 함께 했다

자이아파트에 심을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갔던 그가 본격적으로 조경 탐방에 나선 것은 2012년 전북대 김재식 교수와 ‘한국경관답사’ 모임을 만들면서다. 매달 절이나 고궁을 들러 한국의 전통경관을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꼈다.

“조경 하면 다들 ‘나무 심는 것’ 정도로만 생각해요. 물론, 나무도 심죠. 하지만 조경이 곧 나무는 아니에요. 조경은 공간이에요.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이면서 기능적이고 심미적으로 꾸미는 지가 중요해요. 절이나 고궁을 찾으면 공간 전체를 볼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돼요.”

답사는 4년째 시즌3기까지 진행됐다. 조영철 부장은 이 중 1~2번을 빼고는 모두 참석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답사라지만 또 다른 ‘뚜벅이’ 답사 모임에 학회·협회 일정까지, 사실상 매일을 조경에 푹 빠져 사는 셈이다.

“누가 떠밀었거나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했을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조경 분야가 특히 그래요. 같은 꽃과 나무라도 처음 봤을 때와 알고 다시 봤을 때 느낌이 달라요. 공부한 만큼 새로 보이는 데 힘들 리가 없죠.”

이 모든 건 남편을 또는 아빠를 지지했던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답사를 다닐 때 대부분 아내와, 가끔은 아들과도 동행한다. 덕분에 일을 하면서 오히려 가족 간 정이 두터워졌다. 아들도 이런 아빠가 보기 좋았는지, 대를 이어 조경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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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철 부장이 조경에 참여해 세계조경가대회(IFLA)에서 대상을 수상한 일산자이 전경.(사진제공=GS건설)
◇ 나무·꽃·돌 위치 하나까지 그려내는 재단사

매일을 즐겁게 살아서일까. 64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53세에 접어들었지만 40대 초반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얼굴이다. 심지어 친구 형부터 가족, 답사 얘기를 할 땐 개구쟁이 소년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로 화제를 돌리면 어김없이 전문가의 아우라가 풍긴다.

“예전엔 아파트 조경이라 하면 비싼 나무 몇 그루 심어두는 게 다였어요. 하지만 삶이 윤택해지면서 조경에 환경과 생태를 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나무가 아닌, 숲의 개념이 도입됐다고 보면 됩니다.”

이에 과거 큰 나무 위주의 조경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 1~2년 전부터 키가 작은 나무, 꽃, 바위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큰 나무 사이에 작은 나무와 300여 종의 꽃을 심고, 주변으로 큰 돌과 작은 돌로 단을 만드는 등 회색빛 콘크리트 아파트에 자연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보기 좋다고 남들도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조경은 특히 주관적인 부분이 강해 입주민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곤 한다.

“전국에 10개 현장을 정해놓고 준공 이후 1년간 모니터링을 해요. 조경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한 데다 입주하는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거든요. 이런 의도로 꾸몄는데 지켜보니 아닌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개선할 게 있으면 다음 현장에 적용합니다.”

그의 이 같은 열정에 GS건설이 뛰어든 수주전의 조경승률은 90%에 달한다. 수주에는 실패하더라도 조경부문은 1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3년에는 자연환경관리기술사에 도전해 최단 기간인 9개월 만에 합격했고, 2014년엔 조경학회가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조경인상을 받았다.

조영철 부장은 “생명을 다룬다고 하면 흔히 의학만 생각하는데 나무·꽃 등 생물과 함께 하는 조경학도 해당이 돼요”라며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도 내가 이름을 모르는 것일 뿐, 이름이 다 있는 만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조경에 관심을 가져줬음 좋겠습니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박선옥 기자 pso9820@viva100.com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