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부모에게 재산 돌려줘야…‘불효자 방지법’ 발의

박선옥 기자
입력일 2015-12-28 15:30 수정일 2015-12-28 15:30 발행일 2015-12-28 99면
인쇄아이콘
효도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부모가 부양의무를 저버린 자녀로부터 물려준 재산을 쉽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잇달아 발의되고 있다.

지난 27일 대법원은 부모를 잘 모시기로 하고 각서까지 쓴 후 부동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각서내용을 어겼다면 이를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산을 주기 전 ‘아버지와 같은 집에 함께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나 다른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쓴 덕분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각서 없이 재산을 증여한 경우 다시 돌려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모(89)씨는 1964년 큰아들에게 등기를 이전해준 부동산의 소유권을 놓고 40년도 더 지난 2006년 소송을 냈다. 당시 남편을 여의고 남은 재산을 정리해 마련한 토지와 주택을 큰아들 명의로 뒀는데 큰아들이 2000년 부동산을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최 씨는 소송에서 당시 증여가 자신과 동생들을 잘 보살피는 조건으로 한 민법상 ‘부담부 증여’였다고 주장했다. 약속을 어겼으니 증여를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각서 등 부양을 조건으로 걸었다는 증거가 없었다. 법원은 상대에게 의무가 발생하는 ‘부담부 증여’가 아닌 단순 증여라며 최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단순 증여라도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은 별도로 있다. 민법 556조에서는 ‘증여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증여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각서가 없더라도 자녀가 봉양을 잘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된다.

그러나 법원은 설령 그렇더라도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민법의 또 다른 조항을 근거로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등기이전 등으로 재산을 완전히 넘기기 전에만 증여 취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논의되는 ‘불효자 방지법은 각서가 없더라도 부양의무를 저버린 자식에게 물려준 재산을 좀 더 쉽게 돌려받을 수 있게 이런 민법 규정들을 정비하는 내용이다.

앞서 최씨는 소송 도중 민법 556조 2항과 558조가 재산반환을 어렵게 해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은 2009년 기각됐지만 이 조항들이 6년 만에 고스란히 개정 대상에 올랐다.

556조 2항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증여를 해제할 때 해제권을 6개월 이내에 행사하도록 했다. 이 조항은 “자식이 잘 못 모셨다고 해서 어느 부모가 6개월 만에 소송을 내느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558조는 증여 절차가 이미 이행된 경우 이마저도 못하게 하는 조항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관계의 안정성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이 조항에 합헌 결정했다.

현재 불효자 방지법은 2건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 등 22명이 서명한 민법 개정안은 증여 해제권 행사기간을 ’해제 원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또는 증여한 날부터 5년‘으로 늘리고 558조는 없애는 내용이다.

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사유에 ’학대나 그밖의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추가해 폭을 넓히고 증여받은 재산으로 얻은 이익까지 반환하도록 했다.

서영교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민법 개정안도 비슷하다. 해제권 행사기간을 2년으로 두고 증여 해제 또는 부양의무 청구를 가능하도록 했다.

두 법안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아 내년 5월 19대 국회 회기가 끝나면 폐기될 처지다.

그러나 불효자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데다 법무부도 관련 조항 개정을 검토하고 있어 논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또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 외국 민법을 참고해 의원발의안과 같은 맥락의 민법 개정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선옥 기자 pso982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