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냐? 위안이냐?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기자
입력일 2015-12-08 16:16 수정일 2015-12-08 16:16 발행일 2015-12-0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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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냐? 위안이냐?

중국의 사오싱(紹興)은 경치가 아름답다. 도시 가운데로 흐르는 운하를 따라 목선을 타고 돌아보면, 수백 년 지난 기와집들이 풍기는 옛 중국의 예술성이 온몸에 와 닿는다.

경치만 좋은 게 아니다. 사오싱시가 조성해놓은 산업단지는 제조업을 영위하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한국기업들이 이 지역에 많이 진출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 지역에 진출한 기업들은 한국으로 제품을 들여올 때 어려움이 많았다. 그중 힘든 것이 결제방식이었다.

기업들은 위안화를 달러로 바꾼 뒤 다시 원화로 전환해야 했다. 그러나 1년 전부터 위안화와 원화의 직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숨통이 트였다.

이제 사오싱지역뿐 아니라 중국 전지역기업과 거래하는 한국기업들이 원·위안 직거래를 늘려나가는 중. 직거래규모는 1년 만에 하루 평균 20억 달러 규모로 늘어났다.

올해 3분기의 경우 양국간 수출의 3.4%, 수입은 3.3%가 원·위안 직거래로 이뤄졌다. 이 같은 증가는 국민 기업 신한 우리 KEB하나 SC제일 등 국내 7개 은행과 공상 교통 중국 HSBC JP모건 등 중국 및 외국은행 지점들이 거래효율성을 높인 덕분.

특히 중국 교통은행 서울지점이 청산과 결제를 뒷받침한 결실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원·위안 직거래시장 개장 1주년 기념 컨퍼런스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희남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축사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중국의 계몽주의 문학가인 루쉰(魯迅)이 쓴 소설 ‘고향’에 나오는 구절. 이 글을 쓴 루쉰의 고향이 바로 ‘사오싱’이다.

루쉰이 살던 때 사오싱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그렇게 평안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루쉰은 문학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고 온힘을 쏟았다. 사오싱에 가면 가난한 루쉰이 그 이름난 소흥주를 마시던 곳이 지금은 유명한 주점으로 자리 잡았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주점처럼 사오싱도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앞으로 위안화직거래도 그렇게 될 것이다.

원·위안 거래활성화를 위해 기획재정부는 직거래 중개수수로를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한국에서 위안화채권을 발행토록 하기로 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서울이 ‘위안화 역외금융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 같다.

그렇지만 현재 직거래시장의 확대를 발목잡고 있는 건 중국의 중소기업들. 이들은 아직도 ‘달러선호도’가 너무 높다고 한다. 중국기업인들은 여전히 달러를 가지고 싶어 한다는 얘기. 한국의 기업들이 직거래를 하자고 해도 이들은 달러로 보내달라고 거듭 요구한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 편입되면서 이런 요구는 줄어들 전망. 더욱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위안화 직거래시장을 팽창시킬 것으로 내다보인다.

원·위안 직거래 확대는 결국 원화역외거래의 활성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원화의 대외거래가 크게 늘어나면 원화도 곧 SDR에 편입될 수 있다.

위안화 직거래 확대는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보유하는 건 달러가 좋겠지만 거래하는 건 위안화가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루쉰이 말하지 않았던가.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생긴다고. 돈 흐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cetuus@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