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돈 되는 이야기] 나를 팔아라, 이익을 줘라, 발로 벌어라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기자
입력일 2015-11-03 11:14 수정일 2015-11-03 16:36 발행일 2015-11-04 14면
인쇄아이콘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이른바 ‘007가방’을 든 한 남자가 좌석을 찾아 앉았다. 투박한 얼굴이지만 눈매가 남달리 날카로워 보이는 그는 말끔한 신사정장 차림으로 침착하게 앞쪽만 응시했다. 지나가는 승객들은 그의 기센 표정을 쳐다보다가 “혹시 조폭두목 아냐?”라는 느낌 때문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그 사나이의 007가방엔 과연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언뜻 겉보기엔 그 가방 안엔 대단한 기밀서류나 무기 등이 들어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 가방 안엔 ‘플라스틱 부품’이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이 남자는 평생 처음으로 자기가 직접 만든 엘보 소켓 등 플라스틱부품을 가방 안에 넣고 플라스틱 수요업체가 가장 많은 부산으로 영업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언뜻 보기에 그가 조폭두목처럼 보이는 건 태어나서 이때까지 열심히 해온 것이라곤 오직 검도(劍道)밖에 없었기 때문. 검도만 하면서 살기로 했던 그가 플라스틱부품을 만들게 된 것은 단지 고향 선배 때문이었다.

한양대를 졸업한 뒤 할 일이 없어 헤매고 있을 때 서울 을지로 5가에서 플라스틱 도매상을 하는 강철훈 선배를 한번 찾아갔는데, 선배가 “가게를 좀 지켜달라”고 한 게 플라스틱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그 가게엔 2대의 플라스틱 사출기가 있었는데, 강 선배가 아주 정밀한 부품을 만들 때는 좀 도와달라더니 그 다음부터는 직접 만들어보라고 했다. 공대를 다닌 덕분인지 의외로 정밀도가 높은 부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플라스틱 부품은 기술수준도 중요하지만 ‘영업력’이 뛰어나야만 할 수 있는 사업. 지금까지 영업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장사의 기본 3개 항목’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첫째, 나를 팔아라

둘째, 상대에게 이익을 줘라

셋째, 발로 벌어라

부산에 도착하자 그는 자신을 팔기 위해 발로 걸어서 부산에서 가장 큰 플라스틱 판매상인 한국상사를 찾아갔다. 이 판매상 대표인 박 사장은 그가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그는 다짜고짜 “저는 이런 제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필요하십니까?”라며 응답을 재촉했다.

그러나 박사장은 제품을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더니 그의 얼굴만 한참이나 빤히 쳐다봤다. 이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일부터 납품하시오”라고 퉁명하게 얘기했다. 속으론 기뻐 날뛰고 싶었지만 그는 처음 보는 사장에게 오히려 더 무리한 제안을 했다.

“그렇다면 선금을 먼저 좀 끊어 주십시오”

그러자 박사장은 젊은 사람이 정말 오만하기 그지없다는 듯 아래위를 쳐다보더니 거액의 선금을 그 자리에서 어음으로 끊어주는 게 아닌가.

자신감을 얻은 그는 처음으로 영업출장을 가서 부산에서 나흘 만에 2개 거래처를 더 확보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왕십리 광무극장 뒤에 20평짜리 공장을 차린 뒤 그는 ‘007가방’을 들고 전국을 누볐다.

그는 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선거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되자 ‘007 가방’을 들고 연단에 올라왔다. ‘007가방’은 그의 실천력의 상징이다. 플라스틱조합 이사장이 된 이후 그는 직선적인 ‘검도정신’으로 회원기업들을 이끌었고, 플라스틱리사이클링협회 회장으로서도 회원기업들에 많은 이익을 안겨주는 등 한국의 플라스틱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검도 8단인 그는 요즘 검도실력만 자랑한다. 그의 이름은 사이몬의 ‘이국노’ 회장이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cetuus@viva100.com

20151027010005577_1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