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의 남자들] ②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회장

김보라 기자
입력일 2015-08-19 15:57 수정일 2015-08-19 19:09 발행일 2015-08-2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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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이인원
지난 1월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맨앞)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열린 '안전관리본부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연합)

‘신격호의 남자’에서 ‘신동빈의 남자’로….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이 부회장은 그동안 ‘신격호 총괄회장의 사람’으로 알려져 그의 입과 귀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아흔 살이 넘은 고령인데다 지난해 말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 부회장직에서 해임되고 신 회장이 한일 양국 롯데를 장악하는 상황이 되자 이번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신 회장 측으로 노선을 정리한 것으로 업계 안팎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노선 전환에 따른 신 총괄회장의 분노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달 중순 신 총괄회장이 한국 롯데그룹 최고위 임원의 해임을 지시하는 인사명령서를 쓸 당시 던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장과 함께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지난 1973년 호텔롯데 입사한 후 바로 그 해에 관리담당이사대우로 승진해 1987년까지 14년간 근무했다. 이후 1987년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뒤 백화점 경영의 3대 요직으로 불리는 관리와 상품구매, 영업 등의 업무를 고루 경험했다.

1997년 50세에 롯데쇼핑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고, 롯데쇼핑에 근무하는 10년 동안 롯데쇼핑을 유통업계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다는 평이다.

2007년에는 신 회장의 호위부대로 불리는 정책본부의 부본부장을 맡게 되면서 신 회장을 보좌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이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사람으로 신 회장의 그룹내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졌다.

정책본부에서는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을 관장하며 그룹 경영 체질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에는 롯데그룹에서 ‘비 오너 일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부회장으로 승진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공격적이고 서구적인 경영 스타일의 신 회장이 주요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그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스타일대로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의견을 제시하며 신 회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는 게 롯데그룹 안팎의 평가다.

신 회장의 오른팔로 꼽히는 황각규 사장이 그룹의 각종 인수·합병(M&A)을 주도할 때도 이 부회장은 호텔, 쇼핑 등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을 관장하고 경영체질을 강화해 기반을 닦는 데 힘썼다.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오랜기간 신 총괄회장을 보좌해온 만큼 신 회장 사람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도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하지만 롯데그룹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이 가진 상징성과 영향력을 신 회장 측이 이 부회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그룹을 잘 아는 한 재계인사는 “이 부회장은 40년 이상 롯데그룹에 근무하며 다양한 요직을 거쳐, 그 만큼 롯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며 “신 회장측으로서는 이 부회장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 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쉽사리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bora6693@viva100.com

이인원 부회장은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1970) 

△롯데호텔 입사(1973) 

△롯데쇼핑 이사(1987) 

△롯데쇼핑 대표이사(1997)

△롯데쇼핑 정책본부 부본부장·사장(2007)

△롯데쇼핑 정책본부 본부장·부회장(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