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이 ‘저공행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입 원유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0달러 대로 떨어졌다. 경상도 지역에 이어 수도권에서도 휘발유를 리터당 1500원대에 파는 주유소가 나타났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하루 3000만 배럴의 현행 생산 목표량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국내 유가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기업 생산비용 줄고 가계 소비여력 늘어
국제 유가 하락은 100% 수입에 의존해 원유를 충당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좋은 소식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10% 떨어지면 우리 기업 투자는 0.02%, 소비는 0.68%, 수출은 1.19%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총생산(GDP)은 0.27%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기름 값이 떨어지면 기업의 생산 비용이 줄어든다. 플라스틱과 같은 원재료 가격이나 운송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렇게 줄인 생산비를 투자 확대에 쓸 수 있다. 제품 가격을 낮출 경우 소비도 늘어나는 선 순환 구조가 기대된다.
항공과 해운 업계에게는 특히 긍정적이다. 연료비가 줄어드는 만큼 영업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유가 하락으로 교역 여건도 개선되는 추세다. 지난달에는 수출 가격이 2.9% 내려갔고 수입 가격도 4.2%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이 많아진다. 대외 교역을 통한 우리 국민의 구매력이 커지는 것이다.
여기에 유류비 부담도 줄어들어 가계의 소비 여력은 더 커질 수 있다.
◇석유정제·조선업 수익 악화에 디플레 우려도기름 값이 계속 떨어지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미 1% 초반대인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낮은 유가로 인해 더 하락할 수 있어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물가가 연일 떨어지면 가계는 소비를 미뤄 오히려 내수가 위축될 수 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유가가 공급 요인으로만 낮아졌다면 긍정적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면서 수요 부진을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석유정제산업 등 주력 업종도 수익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유사들은 이미 3분기에 매출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정유 부문에서 대규모 영업 손실을 본 상태다. 유가 하락으로 해상 유전 개발을 위한 해양플랜트 발주가 위축되면 조선업계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
향후 유가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원은 “유가 하락으로 원자재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면 3∼5년 뒤에는 유가 급등이라는 부메랑이 날아올 수 있다”며 “이번에 기름 값이 떨어졌다고 해서 태양·전기 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 소홀하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유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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