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소비되는 '인턴'…결국 꿈으로 끝나는 정규직 꿈

최상진 기자
입력일 2014-11-04 15:33 수정일 2014-11-04 19:15 발행일 2014-11-0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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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생이다] ① 우리시대 20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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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생’ 포스터. (제공=tvN)

케이블TV tvN이 방영중인 드라마 ‘미생’의 시청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내가 그 장그래야!”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이 부쩍 늘었다. 현실감 있는 상황 전개와 가슴을 찌르는 대사가 직장인들, 특히 직장 초년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을 앞둔 20대에게 ‘미생’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하나가 절절하다. 박봉, 잡무, 무시, 그리고 퇴사까지 인턴은 젊은 직장인들 다수가 한번쯤은 겪어봤기에 바둑 용어인 ‘미생’(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음)의 의미가 더욱 다가온다.

‘미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과 유독 닮았다. 낙하산으로 입사한 장그래는 기업 생리를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인턴으로 회사생활을 처음 맛본 이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복사기 사용법을 몰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망설이고 무서워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웃프(웃기면서 슬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모든 일에 만능인 장백기 같은 청년들에게도 사실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 주어져도 척척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 주어지는 일은 늘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을 찾아나서기도 어렵다. 바로 상사의 “오버하지 말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갑갑하지만 그렇게 계절을 보낸다.

누구 못지않은 능력를 갖고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척받는 안영이의 설움도 낯설지 않다. 마초이즘과 군대식 문화에 익숙한 우리 직장인들은 여성과 같이 일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업무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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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인물은 한석율이다. 그는 현장을 중시하며 무엇보다 사람들과 활발하게 관계를 유지하려는 유형이다. 극중에서는 타부서의 일까지 훤하게 꿰며 오지랖을 과시하는, 관계중시형 인간으로 나온다.

지난 9월 인크루트가 집계한 한 국내 기업의 인턴 채용 분야에 따르면 유통, 물류, 운수, 무역이 23.3%로 가장 많았다. 인크루트 관계자는 “고졸 채용,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확대되면서 그만큼 인턴 채용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인턴이 고급인력으로 성장하는 발판이라기 보다는 단순 소비되는 인력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청년들은 정규직의 꿈을 품고 인턴으로 일하지만 결국 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인턴 채용 후 반기평정에 따라 정규직 채용 여부를 가리는 기업도 많다. 그렇게 채용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0월 17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연구기관 청년인턴제 직원 314명 가운데 단 3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비율로 환산하면 0.7%다. 기업들의 실정은 이보다는 아늘지 몰라도 책상을 배치받는 인원보다 라면박스를 들고 회사를 나와야 하는 인원이 절대 다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얼마 전 인턴을 마치고 다시 취업준비생이 된 최종문(25)씨는 “회사를 나오며 버려지는 기분을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자리는 있었으나 늘 그 자리가 남의 것 같고 불편했다. 살아있으나 온전하게 살아있지는 않은, ‘미생’이라는 말이 꼭 맞았다”며 한숨지었다. 기약없이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20대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최상진 기자 sangjin8453@viva100.com

내가 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