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항기 조종사 과로… 불안한 하늘길

천원기 기자
입력일 2014-10-29 16:48 수정일 2014-11-03 18:56 발행일 2014-10-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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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종사 상당수의 연간 총 비행시간이 1000시간을 초과하고, 강도 높은 근무 조건으로 ‘졸음비행’ 위험에 노출되는 등 ‘하늘판 세월호 참사’가 우려되고 있다.

29일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저가항공사(LCC)가 보유한 화물기와 여객기를 합한 운송항공기는 모두 293대로 집계됐다. 2012년 270대, 2013년 283대에서 항공기는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국내 조종사 수도 2011년 4311명에서 올해 4888명으로 577명 증가, 대당 16.7명이다. 항공기 1대당 대략 15~20명의 조종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바닥 수준인 셈이어서 조종사들의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일 항공안전정책연구소 소장이 2013년 10월31일부터 11월7일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1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행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합해 연간 1000시간을 넘는 비행을 하는 조종사는 아시아나항공이 19.8%, 대한항공은 13.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순수 비행시간을 연간 1000시간으로 규제하고 있는 국토교통부의 조건에는 부합하지만 항공사별로 조종사가 100명 중 각각 14과 20명꼴로 ‘비행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합쳐 연간 1000시간을 넘는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조종사의 51.3%와 27.7%가 ‘매우 피곤하다’고 응답한 피로도 조사가 이를 반증한다. 약간 피곤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아시아나는 47.9%, 대한항공은 54.7%에 달한다.

이 소장은 “일부 조종사들은 극한에 가까운 근무를 하고 있다”며 “가용 자원의 여유가 조금 더 있어야 하는데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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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홈페이지 자유발언대에는 조종사들의 근무 조건을 짐작할 수 있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조종사는 ‘767 조종사 부족 사태’라는 제목의 글에서 “767 조종사의 사기는 비행기 엔진 모두 꺼져 추락 하듯 떨어져 있다”며 “신체적 피로에 대한 극도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조종사는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판교 환풍구 사태로 안전이 최고의 화두가 됐지만 조종사들은 최상의 컨디션이 유지되지 않아 실제 비행에 투입되면 몰려 오는 피로와 수면욕으로 미칠 지경”이라고 적었다.

국내 항공 조종사들의 근로여건은 지난해 조종사들의 피로도를 덜어주기 위해 연간 비행시간을 1000시간에서 900시간으로 낮춘 유럽항공청(EASA)이나 850시간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인 중국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항공 안전을 위한 조종사 관리제도 모색 토론회’를 주최한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하늘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항공기 조종사”라며 “하늘에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일선에 있는 항공기 조종사들의 현재 근무 환경과 노동 강도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항공사들이 인력 충원을 통해 조종사의 비행 시간을 줄이고, 피로도를 낮출 수 있지만 이에 따른 비용의 추가 지출이 어렵다는 점이다.

항공시장 자체가 어려운데다 경쟁적으로 취항 노선을 확장하고 대형 항공기를 추가 도입하면서 정작 전문인력 양성에는 ‘쓸 돈’이 없다는 지적이다. 조종사들의 연간 비행시간을 100시간 줄이려면 항공사들은 100~200여명의 인력을 충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관계자는 “LCC 등장으로 항공 시장이 커져 더 많은 인력 충원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종사들은 피로 누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연간 비행 시간을 초과하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운항정책과 관계자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해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면서도 “조종사들이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고 국제민간항공기구 감사에서도 지적 사항이 없었다”고 밝혔다.

한 노조 관계자는 “조종사가 고임금 노동자라는 점에서 비판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항공시 사고 중 70%가 인적 요인이라는 점을 비춰볼 때 세월호 참사와 같은 항공사고를 맞기 위해서는 조종사 인력 수급에 따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천원기 기자 000wonk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