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에볼라 음모론, 저마다의 진실

고현석 국제·생건부 부장 기자
입력일 2014-10-27 16:00 수정일 2014-10-27 18:06 발행일 2014-10-2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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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석 국제·생건부 부장

‘국화를 기르는 사람들, 당신들은 국화의 노예들이오’ 에도 시대 일본의 하이쿠 시인 요사 부손은 집착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했다. 주관적 관념론과 집착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다. 음모론에 대한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두고 온갖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음모론은 존 J 케네디 암살이나 UFO 음모론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8년 미국의 미디어 학자 잭 브래티시는 ‘음모론 패닉’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보통 사람들’이 시작해 대중 문화의 한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활동에 대한 강력한 정부와 미디어의 반응을 해석해기 위한 일종의 ‘도구’ 개념이다. 세계의 주류 미디어는 지난 몇 주 동안 미국 정부의 에볼라에 대한 대처방식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이에 대한 대응논리를 구축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해 왔다.

음모이론은 본질적으로 주류 언론을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는다. 주류 언론의 역할은 오히려 에볼라 확산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와 관계 당국이 얼마나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반대의견들의 움직임을 논리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해 잠재우는데 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 공격, 정치적 암살 같은 예와는 다르게 이번 에볼라 현상은 대중의 생각을 전환시킨다고 해서, 여론을 몰아간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 않는 ‘과학적 현상’의 범주에 들어 있다. 영국 더타임스, 프랑스 르몽드 등의 이른바 전문기자들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번 에볼라 현상의 실질적 구성요소인 과학적 해석, 의학적 증거, 전파 과정에 대해서는 거개가 무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현상적으로만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캐나다 싱크탱크인 글로벌리서치 25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에볼라 사태는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고위 당국자, 영리추구를 하는 보건기관, 다국적제약사라는 세 세력의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교직된 결과물이다. 보고서는 주류 언론이 인터넷과 일부 ‘비제도권’ 과학자들에 의한 음모론의 소스를 찾아 이를 ‘논리적으로’ 다시 뒤집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야말로 권력과 자본에 종속된 주류 미디어가 ‘음모론’에 대해 진실성을 상당부분 인정하고 있는 반증이라고 주장한다. 9·11 테러, 아프간 전쟁, 보스톤 마라톤 테러 등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주류 미디어의 보도방향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역사시대가 시작된 이래 거의 모든 사건의 ‘진실’은 상당 기간 정치적·사회적으로 ‘구축된 진실(Constructed Truth)’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이 존재한다. 진실은 지배세력이 어떤 프레임을 쓰는가에 의해 끊임 없이 변경되고 조작돼 왔다.

에볼라 음모론과 관련해 최근 뉴욕타임스는 이례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포함한 치명적인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의존할 수 있는 있는 것은 다국적 제약사 같은 사기업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신문은 “음모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적어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음모론에서 다루는 부분들이 ‘충분한 진실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보도했다. 주류 언론인 뉴욕타임스가 음모이론에 정색하고 반응을 보인 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만큼 이번 음모론은 강력하다.

조지 오웰은 말했다. “권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은 다음 (권력자가) 원하는 대로 다시 재구성하는데 있다”. 이번 에볼라 사태에서 그 권력자들은 누굴까.

고현석 국제·생건부 부장  pontifex145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