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맴맴…투자자 내모는 '박스피'

김지호 기자
입력일 2014-10-19 09:20 수정일 2014-10-20 09:38 발행일 2014-10-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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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는 저평가 상태입니다. 조만간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입되고 코스피지수는 곧 상승세로 전환할 겁니다.”

국내 주식시장이 급락세를 나타내고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떠날 때마다 증시 전문가들이 내뱉는 공통적인 말이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스피지수 1900선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어김없이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주요기업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목소리에 다소 힘이 빠졌다는 점 정도다.

한국 증시가 ‘늪’에서 헤매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2007년 7월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넘은 뒤 7년이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코스피가 2082.61까지 올라가면서 2011년 5월 2일에 기록한 사상최고치 2228.96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얼마 안 가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10월 들어 외국인이 ‘셀 코리아’ 행진을 이어가면서 코스피는 지난해 말 종가인 2011.34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지수만 봐서는 올해 11개월가량의 기간이 그냥 날아간 것이다. 지긋지긋한 박스권 장세에 오죽하면 코스피에 붙은 별명이 ‘박스피’다.

그래서 또 나오는 말이 ‘국내 증시 저평가설’이다. 물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종료와 기준금리 인상 우려로 달러가 강세를 나타내 외국인 자금이 유출됐다는 변명거리는 있다. 유럽 경기침체 불안감도 외국인 자금이 빠진 원인이다.

사실 국내 증시가 저평가 된 것은 맞다.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930선이 1배 수준으로 추정된다. 현재 코스피는 1900선을 뚫고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 PBR이 1배 밑으로 떨어졌다는 건 장부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를 모를 리 없는 외국인은 서둘러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다. 낮은 배당수익률 등으로 한국 증시에 돈을 넣어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속칭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도 주식시장을 기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량주는 주가가 지나치게 높은데다 0.3%의 증권거래세는 가계소득이 축소된 마당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증시 선진국은 증권거래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여건에 이미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자금은 10년새 70%에서 40%선으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펀드시장에도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30% 밑으로 떨어졌다.

증시의 ‘백기사’로 불리는 연기금도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새로 매입하거나 5% 이상 보유한 투자자가 1% 이상 주식을 매매했을 때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5%룰’에 묶여 소극적인 지수 방어에만 나서고 있다.

돈은 돈이 되는 곳에는 몰리는 법이다. 저평가됐다고 부르짖지 않아도 국내 증시가 투자할 만한 매력이 있다면 자금은 모여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달 중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지만 시장에는 전혀 기대감을 느낄 수 없다. 국내 증시가 국내외 자금을 꾸준히 끌어들일 수 있는 건전한 투자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다.

이상화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측면에서는 고민되는 일이겠지만 한국 기업의 배당을 늘리는 것이 증시활성화를 위해 맞는 방향으로 생각한다”며 “거래세 축소, 파생상품 시장 활성화 등 정책도 정부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better502@viva100.com 

한국증시, 기초체력을 강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