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금융의 그림자④] “구조조정 보다 재교육이 먼저”… 해외 사례로 본 해법

이지은 기자
입력일 2022-06-09 09:47 수정일 2022-06-15 02:00 발행일 2022-06-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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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은행, 직원 맞춤형 디지털 교육 마련
국내 금융사, 재교육보다 신규 채용 중심
비대면 거래 증가 시 일자리 감소 불가피
금융사, 인력 재배치 힘쓰고 근로자 변화 따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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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창구전담직원. (사진=연합)

최근 국내 금융사들이 펼치고 있는 디지털 전략은 IT 기술 개발과 지점 영업 비용 감축 투트랙의 양상을 띄고 있다. 비대면 채널에 개발 비용을 투입하는 만큼 지점 영업에 들어가는 지출을 줄인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용 불안은 크게 염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는 영업인력이 배제된 포용력 없는 디지털 혁신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일자리를 잃는 영업 인력이 늘어날 수록 고용 안전망이 급속히 붕괴되고 경제 활력도 침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해외의 금융사들은 이러한 지점을 고려해 영업 인력과 상생하는 방향의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단순 대면업무 혹은 현장 영업에 종사하는 인력을 새로운 직군에 재배치하는 식이다.

예컨대 일본의 주요 금융지주사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 그룹(MUFJ)의 경우 대출 신청 서류 심사와 어음 교환 등의 후선 업무를 자동화로 바꾼 뒤 해당 업무를 맡고 있던 직원 9500명을 마케팅부서로 재배치했다.

싱가포르 개발 은행 역시 2017년부터 5년간 1500만 달러를 투자해 후선업무 직원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과정을 마친 이들은 소셜미디어 관리자, 모바일 앱개발자 등 디지털 관련 신규 직무에 배치됐다.

해외 은행들은 디지털 관련 부서에 대한 채용을 검토할 때 대면 업무를 맡고 있던 기존 직원들이 금융업에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에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인력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JP모건체이스는 2013년부터 600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MIT를 비롯한 700개 이상의 기관과 함께 직원들 위한 디지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후 기존 직원들이 가진 기술과 새롭게 만들어진 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대조한 뒤 일치도에 따라 맞춤형 트레이닝을 제공했다. 단순 업무 또는 대면 업무에 종사하던 직원들은 자신의 희망 커리어에 따라 교육컨텐츠를 선택해 디지털 역량을 갖출 수 있게됐다

그러나 국내 금융사들은 기존의 인력을 재교육해 새롭게 배치하는 노력보다는 손쉽게 새로운 신규 직원을 채용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관 주도의 지원단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금융 직군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재취업을 돕는 곳은 고용부, 기재부, 금융위 3개 부처 합동으로 출범한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유일하다.

해당 센터는 지난 2015년부터 2017년 동안 일자리를 잃은 금융 직군 종사자 3617명의 전직을 도왔다.

이처럼 금융사들이 디지털 혁신의 결에 맞지 않은 인력들을 우후죽순으로 줄여 나가면서 고용 취약계층의 일자리 안정성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됐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대비 2017년 5년 동안의 근로자 증가 추이를 보면 보험업계는 총 3만 7829명의 근로자가 감소했다. 이 가운데 보험설계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2%(3만 4895명)에 달한다.

비대면 거래 비중이 확대될수록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추세는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노동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비대면 거래가 현재보다 30% 증가하면 1만 4000명의 금융산업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고, 비대면 거래가 50%로 확대되면 2만 3000명이 업계를 떠나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 기준 10대 시중은행의 총 임직원 수는 11만 6000명으로, 이 중 15.5%인 1만 8000여명이 창구텔러직, 영업소 영업보조 직원인 것을 감안하면 추후 1만여 명이 넘는 고용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는 ESG 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는 현시점에서 비용 절감에만 초점을 맞춘 혁신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설계사, 텔러 등 고용이 불안정한 기존 인력이 대거 일자리를 잃을 경우 이들을 구제해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은 결국 정부가 맡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저부가가치 단기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아 사회의 고용불안이 가중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 연구위원은 “기업은 총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기존 인력을 재교육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근로자 역시도 변화하는 추세에 맞춰 디지털 교육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