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금융의 그림자②] “영업소 없애고 수당 깎고”…카드사 모집인 4년만에 절반 이탈

이지은 기자
입력일 2022-06-06 08:10 수정일 2022-06-06 15:01 발행일 2022-06-0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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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연합뉴스)

“영업소는 문을 닫았고 아무리 일해도 예전보다 수당을 가져가기 힘들어졌어요. 회사에서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아요”

10년간 강원도 원주시에서 A 카드사의 카드모집인으로 활동해 온 김수경(가명·48) 씨는 올해를 끝으로 영업 현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한때 월 500만원을 넘게 벌며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적도 있지만 이제는 모두 옛말이 돼버렸다. 원주 시내 곳곳을 단내나도록 누벼도 김 씨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월 2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설상가상 원주에 위치한 영업소가 서울 지점과 통폐합이 되면서 서울로 오가는 차비도 만만치 않게 들기 시작했다. 함께 영업소를 드나들던 10명의 동료 모집인들은 대부분 짐을 싸고 사라져 김 씨를 포함한 단 두 명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카드 업계 CEO들이 신년사를 통해 강조한 올해의 경영 화두는 ‘디지털 금융’이다. 경쟁자로 급부상한 빅테크 기업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카드사 본연의 결제기능을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플랫폼과 빅데이터 위주로 사업 방향을 바꾸면서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자 카드사들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끌어낼 수 있게 됐다. 반면 그 과정에서 카드 모집인들은 많이 일해도 적게 버는 악순환 속에 갇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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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량 못 채우면 수당 일체 없어”

김 씨처럼 영업 현장을 떠나는 카드 모집인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6일 금융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7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카드 모집인 수는 8139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 말 기준으로 1만6658명에 달했던 모집인 수는 불과 4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카드 모집인 수가 급감한 이유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신용판매 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카드사들이 카드 모집 비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기준 7개 카드사가 지출한 카드 모집 비용은 3876억원으로 전년 동기(4204억원)에 비해 7.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5529억원)에 비하면 무려 1662억원이 줄어들었다

카드 모집 비용이 줄어드니 모집인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줄어들었다. 카드 모집인은 특정 회사와 계약을 하고 영업 활동을 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신규 고객을 유치해 얻는 수당으로 소득을 올린다. 이들이 받는 수당은 카드를 발급할 시 지급하는 발급 수당과 고객이 매월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할 경우 지급하는 이용 수당으로 나뉜다. 발급수당은 최소 1만원이 지급되며 고객이 10~12개월 동안 월 50만원 이상 꾸준히 사용할 경우 해당 기간 동안 월 2~3만원이 추가로 더 떨어진다.

모집인들은 카드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수당 구조를 무리하게 바꾸면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2년 전 사측에 12개월 동안 월 50만원을 사용해야 수당 2만원이 나오는 식으로 수당구조를 바꾸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며 “이후 힘들어하는 모집인들이 늘자 사측이 10개월간 월 3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꾸었지만 언제 다시 말을 바꿀지 몰라 몹시 불안에 떨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더해 김 씨가 근무하는 A 카드사의 경우 매월 8~10건의 신규 발급 할당량을 부과해 이를 채우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이용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카드사는 6개월 이후부터는 고객이 월 100만원을 사용해야 이용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해 수당을 받지 못하는 모집인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B 카드사에서 근무하는 모집인 오현숙(가명·58) 씨는 “모집인 통해 카드를 발급하는 고객은 중·장년층이 많은데 이들은 주로 오프라인 결제로 카드를 사용한다”며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을 줄인 고객들이 매월 100만원씩 카드를 쓰지 못하게 되면서 이용수당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불황 속 배불린 카드사…포용적 디지털 전환 힘써야 카드 모집인들이 줄어든 수당에 생계유지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동안 카드사의 배는 불러만 갔다.

지난해 7개 카드사가 올린 당기순이익 합계는 약 2조6396억원이다. 2020년 당기순이익(1조7328억원)에 비하면 36%나 증가했다. 올 1분기 역시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선방한 실적을 올렸다. 롯데카드는 전년 동기 대비 81% 증가한 9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으며 우리카드(855억원), 삼성카드(1608억원)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 16%씩 증가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양상이라면 최대한 사각지대의 근로자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인해 그간 과당경쟁의 길을 걸어온 카드사들이 모집인처럼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무 중심으로 조직을 해체하고 있다”며 “근로자들이 존중을 받을 때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배제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등 포용적 디지털 전환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