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금융의 그림자③] 벼랑끝에 몰린 캐피탈 대출상담사

이지은 기자
입력일 2022-06-07 11:05 수정일 2022-06-15 02:36 발행일 2022-06-0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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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캐피탈이 던져놓은 미끼 같은 존재입니다”

10년 째 A 캐피탈에서 대출모집인으로 일해온 이선우(가명·59)씨는 스스로를 대출 시장의 미끼로 칭했다. 지난해 이 씨의 차량 주행거리는 무려 30만km에 달한다. 매달 300만원의 유류비를 들이며 전국 곳곳에서 계약을 중개했지만 대출액 1000만원 당 그의 손에 떨어진 수수료 수익은 고작 25만원에 불과했다.

캐피탈은 이 씨가 유치한 고객들의 대출 만기일이 도래하면 이들에게 추가 대출 유도 문자를 보냈다. 고객들이 문자를 보고 재대출을 받아도 캐피탈은 이 씨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대출 과정에서 고객의 연체가 발생하자 이 씨에게 향후 수수료 수익이 삭감될 수 있다는 시말서를 쓰도록 했다.

이 씨는 “캐피탈 회사는 우리가 데려온 고객이 만들어낸 파생 수익을 혼자 독식하기 바빴다”고 토로했다.

◇수수료 인하에 상담사들 수익급감최근 들어 캐피탈사들은 모집인들을 관리하는 영업소를 폐쇄하고 잇따라 영업비용을 줄이고 있다.

7일 금융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대출상담사에게 지급되는 비용이 포함된 캐피탈사의 판매관리비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16년 9352억6100만원에 달했던 6개 캐피탈사(하나·DB·롯데·우리금융·웰컴·현대)의 판관비는 2018년에는 2.9% 줄은 9073억 2100만원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8893억원까지 떨어졌다.

비용 감축에 사활을 건 캐피탈사들은 상담사 수수료 체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A 캐피탈사의 경우 2010년대 초반에는 상담사가 3000만원의 대출 실적을 올리면 기본급 30만원을, 7000만원의 실적을 올리면 50만원을 지급했다. 여기에 달성한 실적의 4%를 수당으로 얹어줬다. 그러나 2019년부터 기본급 제도를 폐지하고 대출 실적당 2%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수수료 체계를 바꿨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대출 총량을 제한하고 DSR(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규제를 강화하면서 실적을 올리려면 이전보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나야하는 어려움도 생겼다.

B 캐피탈사 대출상담사 박기철(57·가명) 씨는 “예전에는 대출 실적 1억원을 달성하려면 100명 정도만 만나면 됐는데 DSR 규제가 강화되면서 고객마다 대출한도가 적게 나오니 이제는 300명을 만나야 한다”며 “확보해야 하는 고객 수가 늘수록 유류비도 많이 들어 이제는 수익보다 기름값이 더 나오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부 구조 쥐어짠 캐피탈은 호실적 행진상담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동안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는 올해 1분기 역대급 호실적을 거뒀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캐피탈 등 5개 금융그룹 캐피털사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3595억원으로 전년 동기(2261억원) 대비 59% 증가했다.

캐피털 업계는 기업 대출과 부동산PF 등 기업금융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한 효과라고 설명하지만 상담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대출 규제 강화로 업계에 타격이 강해지자 사측이 상담사와 같은 하부 구조를 쥐어짜 손실을 방어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DSR 규제가 강화되거나 대출 총량 제한 등으로 대출 시장에 큰 변동이 생기면 캐피털 업체들은 가장 먼저 상담사의 수수료를 줄였다”며 “가장 아래 계층의 상담사를 쥐어짜 손실을 메웠다 보니 사측은 늘 최소한의 타격만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

고령층 고객 위한 대안 서비스 필요”이 씨처럼 더 이상 대출 계약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 상담사들은 보험설계사와 부동산 담보대출 중개인 쪽으로 이직을 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중은행보다 대출 모집 채널이 한정적인 저축은행 업계가 길을 잃은 상담사를 대거 영입했지만 상담사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C 캐피탈사의 대출상담사 김미화(57·가명) 씨는 “연령대가 높은 대출상담사들은 쉽게 전직을 택하지 못해 그나마 수요가 있는 저축은행 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뿐”이라며 “저축은행들도 비대면 대출 고객이 늘어나면 상담사를 제일 먼저 내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상담사들이 업계를 떠나면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중·장년층의 소상공인 고객들이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대출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년층 소상공인들에게 대출상담사들은 일종의 개인 컨설턴트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상담사들은 아직도 장년층의 상인들은 상담사를 통한 대출 의존도가 높다고 밝혔다.

이 씨는 “상인 중에는 원리금균등상환 같은 용어를 모르는 이들도 많아 상담사들이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대출 절차를 천천히 알려준다”며 “금융사들은 무작정 상담사부터 줄이기보다 고령층 고객들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