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이재규 감독 “시스템 무너진 사회… 그래도 사람이 희망”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2-02-09 18:30 수정일 2022-02-09 18:30 발행일 2022-02-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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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지금 우리 학교는' 이재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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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 (사진제공=넷플릭스)
“저는 사람을 믿고 싶어요. 기존 연출작에서도 꾸준히 희망을 찾으려고 했죠. 드라마 속 ‘좀비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대사는 결국 희망도 사람한테 있다는 의미입니다.”
글로벌 ‘K스쿨좀비’ 붐을 일으키고 있는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이재규 감독은 시리즈 속 12편에 압축된 메시지를 ‘희망’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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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주동근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고 생동감있게 그렸다. 드라마는 지난 달 28일 공개 이후 온라인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열흘 연속 넷플릭스 TV쇼 부문 세계 1위에 올랐다. 한국·일본·프랑스 등 50여개 국가에서는 ‘오늘의 톱10’ 1위다. 원작과 달리 팬데믹, 세월호, 학교 폭력 등 한국적인 사건과 배경을 한국인의 시선에서 녹여낸 게 오히려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좀비 바이러스’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아들을 위한 과학교사의 실험에서 비롯된다. 드라마 속에서는 2진을 향한 1진의 폭력, 여학생을 향한 디지털 성폭력 등 다양한 학교폭력이 존재한다. 여학생이 화장실에서 남모르게 출산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감독은 “우리는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돼 있다”며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사회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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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지후에게 촬영 장면을 설명하는 이재규 감독(사진제공=넷플릭스)
“‘학폭’은 사회적 문제입니다. 그런데 학교 뿐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폭력은 모든 집단에서 벌어질 수 있죠. 자기 목숨보다 노출된 영상이 공개되는 걸 두려워하는 여학생에게 그런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았으면 했습니다. 청소년 미혼모의 화장실 출산 역시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됐지만 결국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죠.”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선실 안에 가만히 있어라”고 했던 세월호와 달리 드라마는 살아남기 위해 자리를 박찬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며 책임지는 어른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 감독은 “특정한 사건 하나를 모티프로 삼은 건 아니지만 현대 사회의 다양한 사건 사고를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든 삼풍백화점이든 일어나선 안 될 인재(人災)잖아요. 아이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나서는 장면을 통해 국가나 시스템이 책임지지 못하는 모습과 대비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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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 (사진제공=넷플릭스)
통상적인 좀비 극과 달리 면역반응을 보여 인간처럼 되살아난 ‘절비’(절반만 좀비) 역시 인상적이다. 이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사례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다. 
“10명이 좁은 공간에서 식사를 해도 누군가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반면 누군가는 음성판정을 받잖아요. 그런 것처럼 좀비 바이러스 역시 돌연변이 상황이 생겨 누군가에게 면역기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이런 변주가 향후 좀비 이야기를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 여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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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은 ‘10대 좀비’ 이야기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도서관, 급식실, 음악실, 방송실 등 학교 내 수많은 공간을 배경으로 움직이는 좀비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K좀비’만의 차별화 포인트다. 여기에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10대들의 사랑을 더했다. 이 감독은 촬영 내내 헌신적으로 임한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공이 컸다고 강조했다. 
“도서관 촬영은 개인적으로 제가 좀 힘든 시기에 5일에 걸쳐 촬영했는데 전문스태프들, 젊은 배우들이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헌신적으로 임하며 애쓰는 모습에 감동받고 용기를 얻었어요. 사실 저는 호러 마니아가 아니라서 좀비물을 전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웃음)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좀비물을 만들고 싶었죠. 특히 10대에게 사랑과 우정은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잖아요. 혹여 10대들의 감정을 놓칠세라 촬영 당시 10대였던 배우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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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 (사진제공=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징어게임’과 ‘지옥’을 잇는 K디스토피아 콘텐츠의 연이은 흥행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서울대학교 신문학과 90학번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라는 이 감독은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시장의 창문을 살짝 열었다면 좋은 콘텐츠가 계속 그 창문으로 배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오징어게임’이 넘사벽(매우 높은 기준)이라고 생각했는데 황 감독에게 전화하니 ‘내가 문을 살짝 열어놓은 건데 부담 가지지 말고 하라’면서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죠. 하하.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시즌1이 인간들의 이야기였으니 이제 좀비들의 생존을 다뤄볼까 합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