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국민MC'의 시초, 허참… 하늘나라로!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2-02-03 18:00 수정일 2022-02-03 18:00 발행일 2022-02-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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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Tallk] 별이 된 원조 국민MC, '가족오락관' 허참 별세
장례식장 마련된 허참 빈소
장례식장 마련된 허참 빈소(연합)
방송인 허참(73·본명 이상용)이 1일 세상을 떠났다. 방송가에 따르면 고인은 간암 투병 중 이날 눈을 감았다. 지난 2008년 대장 선종을 발견하고 대수술을 받은 그는 직접 기른 채소를 먹으며 회복에 집중해 왔다. 지난해 12월까지도 초보 농부로서 전원생활을 즐기는 여유와 바리스타로 새로운 인생을 만끽하는 모습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투병중이었지만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팬들에게 민폐가 될 것을 우려해 자신의 상태를 비밀에 부쳤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허참은 1970년 음악다방 ‘쉘부르’ MC로 연예계에 입문해 1971년 TBC(동양방송) ‘7대 가수쇼’ MC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1974년 MBC 라디오 ‘청춘을 즐거워’, TBC ‘가요앙코르’ ‘쇼쇼쇼’ ‘가요청백전’ ‘올스타 청백전’ ‘쇼 일요특급’ ‘싱글벙글쇼’ ‘젊음은 가득히’ ‘푸른신호등’ ‘허참과 이 밤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입담을 뽐내왔다.
그의 대표작인 KBS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첫 방송의 진행을 맡으며 시작해 2009년 4월 막을 내릴 때까지 25년간 MC 자리를 지켰다. 고인이 ‘가족오락관’에서 외쳤던 “최종점수 몇 대 몇?”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예능 역사의 시초로 불린다. ‘가족오락관’이 끝난 뒤에도 그는 ‘트로트 팔도강산’ ‘골든 힛트송’ 등 음악 프로그램 MC를 맡으며 건재함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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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타고난 재치는 예명으로 사용한 ‘허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방송을 통해 고인은 “1960년대 말 서울에 올라와 DJ로 인기를 끌고 난 후 누군가 이름을 물었는데 너무 평범한 이름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더니 ‘허 참, 본인 이름도 모르냐’라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그 사람에게 ‘기억났다. 내 이름은 허참이다’라고 되받아친 게 시작”이라고 밝혀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임백천, ‘뽀빠이’ 이상용 등과 함께 ‘국민 MC’로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게스트로 나온 출연자들의 어색한 행동과 과한 농담을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며 탁월한 진행능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TV진행자상, 2006년 KBS 연예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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