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美 테이퍼링 결정에 변수로 떠오른 8월 고용충격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1-09-06 07:20 수정일 2021-09-06 07:20 발행일 2021-09-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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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상점 밖에 ‘구인 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AFP=연합)

전세계 금융시장이 주목해온 미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일정에 변수가 생겼다. 8월 미국의 일자리 증가수가 시장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24만개를 기록하면서다. 인도발(發) 변이 바이러스인 ‘델타 변이’가 확산한 영향이었다. 미국의 백신접종률은 60%를 웃돌지만 델타 변이 여파로 여전히 세계 최다 확진자수를 기록 중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연내 테이퍼링 시작에 단서를 달았던 고용과 델타변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8월 고용보고서가 나온 뒤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충격적인 미 8월 고용통계

미 노동부가 3일(현지시간) 발표한 8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경기의 동향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비농업 일자리가 23만5000개 증가하는데 그쳤다. 당초 시장 예상치(73만 명) 뿐만 아니라 5~7월의 월평균(87만6000개)을 모두 크게 밑돌았다. 다만 실업률은 5.2%로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실업률은 지난 6월 5.9%, 7월 5.4% 등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고용 충격에 뉴욕증시는 혼조세를 나타냈다. 3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74.73포인트(0.21%) 내린 3만5369.09에 거래를 마쳤다. S&P500지수는 전장대비 1.52포인트(0.03%) 하락한 4535.43을,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32.34포인트(0.21%) 상승한 1만5363.52로 각각 장을 마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8월 잭슨홀 연설에서 연내 테이퍼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테이퍼링 결정이 가능하려면 물가와 고용에서 ‘상당한 진전’이 나타나야 하는데, 물가(인플레이션)는 이미 조건을 충족했으나 고용은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8월 고용통계에서 비농업 일자리가 85만~100만 명 증가한 것으로 나오면 연준이 ‘고용에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리라 예상했다. 이 경우 이르면 9월 FOMC에서 테이퍼링이 발표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이자 현재 금융컨설팅업체 매크로폴리시 퍼스펙티브의 대표인 줄리아 코로나도는 블룸버그통신에 “이번 고용보고서로 9월 FOMC의 테이퍼링 결정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코로나도 대표는 “연내 테이퍼링 가능성은 여전히 있으며, 향후 몇 개월간의 경제지표가 테이퍼링 발표시기와 속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레이트 힐 캐피털의 토머스 헤이예스 전무이사는 로이터통신에서 “내 예상으로는 테이퍼링 발표가 9월이 아닌 11월에 있을 것 같고, 테이퍼링 실시는 아마도 연말쯤, 이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내년초쯤일 것 같다”며 “10월에 테이퍼링이 시작될 가능성은 이제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번 고용지표는 연준 테이퍼링 일정을 가늠하는 데 핵심 변수였던 만큼 향후 테이퍼링 시작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며 “9월 테이퍼링 발표 전망이 크게 약화하고 11월 이후 발표가능성이 증가했다”고 짚었다. 센터는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서 코로나19 재확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됐다”며 “일각에서는 지표 부진으로 연준의 테이퍼링 지연 및 추가 경기부양책 기대감 확대가 증시를 지지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델타 변이 확산 새 진앙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지난 8월 10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이동검사소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줄지어 있다. (EPA=연합뉴스)
◇ 백신접종률 60%에도 델타변이에 확진자수 여전히 세계 최다

CNBC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실망스러운 고용통계의 원인으로 델타 변이 확산을 지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용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3일 백악관 연설에서 “이번 고용통계가 강하지 않은 이유는 델타 변이 때문이라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지속성있고 강한 경제의 회복이다. ‘바이든 플랜’의 효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며, 8월 실업률이 5.2%로 지난 1월의 6.3%에서 1.1%포인트 줄어든 점을 강조했다.

취임 후 정책의 상당부분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집중해온 바이든 대통령은 “델타 변이와 싸우는 데 있어 더욱 많은 진전이 필요하다”며, 의회가 3.5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 등을 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백신접종율(최소 1회 이상 접종)은 62%다. 그러나 델타 변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누적확진자수가 4000만 명을 넘어섰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3일 기준 신규확진자수는 18만3150명이었다. 누적확진자수는 4076만1851명으로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 사망자수 역시 66만5463명으로 세계 최다다. 뉴욕타임스 집계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일평균 신규확진자수는 16만3667명으로 전주대비 12% 증가했다. 미국에서 일평균 확진자가 16만 명을 넘어선 것은 겨울철 대확산이 있었던 올해 1월 27일 이후 처음이다.

긍정적 고용지표에 사상 최고치 마감한 다우·S&P500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회장 (EPA=연합뉴스)

◇ 미 고용, 왜 중요한가?

세계 금융시장은 왜 미국의 고용지표에 주목할까. 고용은 미국 기업과 가계의 상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연준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중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2020년 기준)이 약 67.2%다.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이 한국(46.4%)은 물론이고, 일본(53.5%), 독일(50.7%), 중국(37.7%) 등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해 훨씬 높다. GDP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고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기업이 고용을 늘린다는 것은 그만큼 생산활동이 활발하고, 앞으로의 경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 고용의 중요성은 연준의 통화정책 목표에서도 확인된다. 연준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목표로 하는 한국은행이나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하는 유럽중앙은행(ECB) 및 일본은행(BOJ)과 달리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통화정책 목표로 하고 있다. 고용지표의 호조 또는 부진에 따라 연준의 통화정책 스탠스가 달라질 수 있어 금융시장이 고용보고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고용보고서를 통해 발표되는 지표에는 기관조사(14만여 민간 및 정부기관 대상)를 통해 발표되는 전월대비 전체 비농업취업자수 증감과 가계조사(6만가구 대상)를 통해 발표되는 실업률이 있는데, 시장에서는 전체 비농업취업자수 증감을 더 주목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적고, 실제 급여내역(payroll)을 바탕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가계조사의 설문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허위답변 등의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 고용보고서는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에서 가계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주로 매월 첫 번째 금요일에 발표한다. 연준의 통화정책이 결정되는 올해 남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일정은 9월(21~22일), 11월(2~3일), 12월(14~15일) 3차례다. 연준이 테이퍼링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새로운 고용지표를 확인한다면, 9월 고용보고서(10월 8일 발표)는 11월 FOMC 결정에, 10월 고용보고서(11월 발표)는 12월 FOMC 결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델타 변이가 고용 회복세에 계속해서 지장을 준다면 테이퍼링 스케줄은 당초 예상보다 뒤로 밀릴 수도 있어 보인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