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뭘 자꾸 찍으라는지… '디지털문맹' 노인들 쉴 곳 없다

김아영 기자,안동이 기자
입력일 2021-08-31 07:00 수정일 2023-04-04 19:02 발행일 2021-08-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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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고령층 디지털 정보화 수준 64.3%
코로나 장기화에 갈 곳 없는 노인들 … '노인 패싱' 없도록 배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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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대면 접촉이 제한되면서 ‘노인 패싱’이 일상화되고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편의적 환경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노인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복지시설들이 다시 문을 열고 디지털 교육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참여도 역시 떨어져 실효성이 의문시 되는 상황이다.◇ 코로나 장기화에 급속한 디지털화… 노인 쉴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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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대부분의 경로당이 문을 닫은 가운데 다중이용시설 출입 QR코드 등 디지털에 서툰 고령층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길게 줄지어 앉아있는 노인들.(연합)

최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돌담길을 오후에 가보면 예전보다 훨씬 많은 어르신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공원이 폐쇄됐건만 이들은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 경찰이 자주 방역 단속을 나와 해산시키지만 그 때 뿐이다. 이내 삼삼오오 다시 모여 장기판을 연다.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장득연(68) 씨는 “살기 위해 나온다"며 "혼자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갑갑하고 우울하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박순학(76) 씨도 경로관이 문을 닫아 주변에 노인들이 모일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탑골공원을 찾는다고 했다.

문제는 코로나 발생 2년 가까이 되도록 노인들을 위한 공간 마련에 별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카페나 영화관 등 젊은층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노년층을 위한 공간은 경로당이나 복지시설 등이 거의 전부다. 이마저도 대부분 운영이 중단되거나 사라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에 운영되던 경로당은 3483곳이었는데 7월 말 기준으로는 2553곳에 그쳤다. 최근 백신 접종 덕분에 70% 정도라도 올라왔다고 한다. 그래도 학원, 체육시설, 카페 등이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차이가 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비대면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다”며 “노년층 백신 접종도 웬 만큼 했으니 이제는 과감하게 시설 운영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바깥 출입하고 싶은 노인들… 만연한 ‘노인 패싱’에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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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는 여전히 많은 노인들에게는 넘기 힘든 장벽이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코로나로 디지털 환경이 급속히 보편화되면서 노인들의 소외감도 덩달아 깊어진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전국 음식점과 숙박업소 등 다중이용시설 출입시 QR코드 등 전자출입명부 작성을 의무화했지만 노년층에게 온라인 쇼핑이나 QR코드 인증, 무인 판매기 사용, 온·오프라인 간편 결제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종로에서 만난 한 70대 남성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런 걸(QR코드) 보여 달라고 하면 무서워. 뭔지도 모르니까…” 이들에게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다. QR코드나 키오스크를 찍어보려 애를 써보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민폐만 끼칠 뿐이다. 가게 주인이 귀찮다는 듯 “어르신은 저쪽에 수기명부를 작성하라”고 말할 땐 서럽기까지 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9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4.3%로 농어민(70.6%),장애인(75.2%)보다도 낮다. 디지털화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 노년층 대상 디지털 교육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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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최근 다시 문을 여는 노인 복지시설 등에서 노년층 디지털 패싱 문제를 해결하려 관련 교육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감염을 우려한 가족들의 저지와 열악한 시설 환경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려운 분위기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교육이 대부분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바람에 교육의 실효성은 더더욱 떨어지고 있다.

노년사회화교육의 일환으로 스마트폰·키오스크·SNS 활용, 컴퓨터·유튜브 입문, 문서편집 활용 교육을 시행 중인 서울시 중구시설관리공단 약수노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거리두기 강화로 기존의 대면 교육을 줌(화상회의 서비스)으로 전환해 진행하고 있는데 이후 어르신 참여율이 떨어지고 이해도도 낮아진 편”이라고 전했다.

관악구노인복지관 관계자는 “80세 이상 고령층은 스마트폰을 갖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다 와이파이 접속 방법을 잘 숙지하지 못해 교육 영상을 시청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방역 지침에 맞춰 기존 200명을 수용하던 대면 강의를 올해부터 50명 미만으로 축소해 재개했는데, 온라인 강의 참석에 어려움을 느끼는 노인들이 대거 몰리면서 추첨까지 진행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 제자리 걸음 디지털 교육, 보완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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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2021년 디지털 뉴딜 분야 예산 7조 6000억 원 가운데 교육 분야 예산은 약 1000억 원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노년층’을 위한 교육인프라 구축관련 예산안은 따로 찾기 어렵다. 날로 심화하는 노년층 디지털 격차에 대한 실효성 있는 중장기 대책이 미비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기존복지 서비스를 보완·활용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교육 서비스 제공 주체에 대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지원사’의 도움을 얻는 방법이 있다. 이들 업무에 취약계층 어르신들을 위한 생활교육이 포함되는데, 추가로 일대일 스마트폰 활용 교육 및 QR코드, 무인판매대 활용법 전수 등 디지털 관련 기초교육을 돕게 하는 것이다.

노인 공익형 일자리의 하나인 ‘노노케어(老老CARE)’ 사업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있다. 독거노인이나 경증치매 노인 등 취약 계층 노인들에 대한 기존의 안부 확인, 말벗 및 생활안전 점검 서비스 외에 디지털 기초 교육까지 맡기는 것이다. 일자리를 원하는 어르신들에게 기초 디지털 교육을 먼저 시행하고, 그들이 짝을 이뤄 같은 눈높이에서 동료 취약 계층 노인들을 도움으로써 노인 일자리 문제와 돌봄 문제, 디지털 격차 해소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자는 것이다.

그나마 지자체에서 노인디지털 교육 확대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다행이다. 노년층을 비롯해 누구나 디지털 기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배움터’ 사업이 올해 전국 17개 광역 시·도와 226개 기초지자체에서 확대 실시된다. 지난해 시작한 이 사업으로 6개월간 1076곳에서 42만여 명이 디지털 역량 교육을 받고 강사와 서포터즈로 4700여 명이 채용되어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김아영·안동이 기자 ay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