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인구 14억 대국 인도, 13년만의 금메달에 축제 무드

권기철 객원기자
입력일 2021-08-09 07:20 수정일 2021-08-09 07:20 발행일 2021-08-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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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철의 젊은 인도 스토리] 올림픽과 인도 스포츠 (상) 도쿄에서의 아쉬운 승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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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 여성이 일반적으로 입장할 수 없는 스모 경기장에서 로블리나 보르고하인이 여자 웰터급 64~69㎏급 복싱 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녀는 홍차로 유명한 고향 아쌈 출신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비젠더 싱과 메리 콤에 이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세 번째 인도인 권투선수가 되었다.

아쌈은 대한민국의 4분의 3 정도 크기에 주민 3500만명이 사는데 90% 가까이가 농업에 종사하는 아주 가난한 주다. 아쌈주 의회는 그녀에게 30만 루피(약 100만원)의 포상금과 그녀 명의의 스포츠 센터 건립을 약속했다. 또 그녀 마을까지의 3.5㎞ 비포장 도로를 포장해주기로 하고 공사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인도는 폐막을 앞둔 지난 7일 극적으로 남자 창던지기의 나자르 초프라(24)가 인도 육상 121년만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것을 포함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와 동메달 3개 등 총 6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인구 13억 8000만명의 인도는 2012년과 2016년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었으나 막판 극적인 금메달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하지만 이전 대회까지 역대 금메달 9개 중 8개가 남자 필드하키였고 사격에서 금메달 1개를 추가했을 뿐 다른 종목에서는 계속 고전하는 상황이다. 최근 사사건건 경쟁하고 있는 비슷한 인구 규모의 중국의 메달 숫자에 비하면 사실 경쟁이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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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신두(중간) 선수와 모디 총리, 한국인 코치 김지현(오른쪽), 그녀의 헌신으로 신두의 우승이 가능했다. 그녀의 후임이 박태상 감독이다. 사진 = 힌두스탄타임즈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중국이 금메달만 40여 개 가까이 획득한 것에 비해 인도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인도는 올림픽에서 획득한 1인당 메달 수가 가장 적은 국가중 하나다.

인도는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제국의 깃발을 들고 참가했다. 초기에는 개인전 위주로 참여했고, 성과도 컸다. 파리 올림픽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메달을 딴 기록도 가지고 있다. 당시 2개의 은메달은 육상 200m와 200m 허들에서 나왔고 모두 한 선수에게서 나왔다.

1904년에서 1916년까지는 영국 식민 인도 제국 정부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올림픽에 참여를 하지 못했다. 민족의식이 높아지기 시작한 1920년 벨기에 엔트워프 올림픽부터는 저명한 후원자들과 정치인들의 후원으로 단체전에도 참여하기 시작해 그 이후 모든 올림픽에 참가했다. 인도는 1900년 이후 열린 하계올림픽에서 이전까지 총 33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필드하키에서 11개, 레슬링에서 6개, 사격에서 4개, 배드민턴과 복싱에서 각 3개, 역도, 육상에서 각 2개, 테니스에서 각 1개를 획득했다. 지난 5일 일본 도쿄 오이 하키 스타디움에서 열림 남자 필드하키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독일에 5-4로 승리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1980년 이후 41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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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올림픽에서 미국과 경기모. 사진= 인도 올림픽위원회

인도는 과거 남자 필드하키 강국으로 통했다.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를 시작으로 1980년 모스코바 대회 사이 12번의 올림픽에서 11개의 메달을 획득하면서 올림픽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필드하키 게임에 최초로 참여한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무패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1928년부터 1960년까지 올림픽경기에서 30승 무패를 기록했고, 1980년까지 무려 8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1928년과 1956년 사이 올림픽 경기에서 단 한 골의 실점도 않은 대기록도 가지고 있다.

인도 하키의 암흑기는 인도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사회주의 경제체계의 한계와 IMF구제금융을 받았던 1991년을 전후로 근 30여 년간 인도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소수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포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초프라의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포상금과 각종 격려금이 예상된다.

주요 언론에 따르면 하리아나주 정부는 도쿄올림픽 레슬링 57㎏급 남자 자유형 은메달리스트인 라비 쿠마르 다히야에게 4000만 루피(약 6억 1000만원)의 포상금과 함께 디히야의 고향에 현대식 실내 레슬링 경기장을 지어주겠다고 밝혔다. 인도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81달러(약 240만원)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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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첫 올림픽 참여한 남자 하키선수들의 모습. 사진=인도 올림픽위원회
다히야는 카자흐스탄의 누리슬람 사나예프와 준결승에서 2-9로 뒤지다 역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사나예프가 다히야의 팔을 깨무는 모습이 포착되어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 몇 초간 팔이 꽉 물렸지만 다히야는 그 엄청난 고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참아냈다. 경기가 다 끝난 다음에야 그는 주심에게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 인도 국민들은 그의 인성에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리아나주 정부는 다히야에게 금전적 보상과 별도로 공직도 추가로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부 펀자브주도 동메달을 획득한 남자 필드하키 선수 중 해당 지역 출신 8명에게 각각 1000만 루피(약 1억 55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리아나주도 하키 선수 2명에게 각각 2500만 루피(약 3억 8500만원)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기차 검표원으로 일하면서 이번 올림픽에서 인도에 첫 메달을 안긴 미라바이 차누도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거액의 포상금과 새로운 직업까지 얻는, 말 그대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차누는 역도 여자 49㎏급 경기에서 인상 87㎏, 용상 115㎏, 합계 202㎏을 기록해 중국의 허우즈후이(인상 94㎏, 용상 116㎏, 합계 210㎏)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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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여자 역도 은메달리스트인 차누 선수가 귀국후 촬영진에 둘러쌓여 있는 모습. 사진= 타임스 오브 인디아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카르남 말레스와리가 동메달을 딴 이후 역대 올림픽 여자 역도에 인도 여자 선수 최초의 은메달이었다.

미얀마 접경인 마니푸르주 임팔에서 44㎞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차누는 어릴 때 장작을 옮기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20세였던 2004년 영연방경기대회 역도 여자 48㎏급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기대주로 성장했다. 차누는 2016 리우 대회 때 처음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지만 6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잃지 않았고 결국 기차역 검표원으로 일하면서 운동에 매진한 끝에 인도 여자 역도의 역사를 새로 썼다.

차누의 은메달 소식에 고향인 마니푸르 주정부는 1000만 루피(약 1억 5500만원)의 파격적인 상금과 함께 다음 올림픽까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찰 고위직 간부 자리까지 약속했다. 다른 부처에서도 30만 루피(약 460만원)의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철도부장관은 인도 철도의 역사적인 경사라며 차누에게 2000만 루피(약 3억 1000만원)의 포상금과 함께 승진 계획까지 발표했다.

배드민턴 단식에서 동메달을 딴 스타 푸실라 V 신두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인도에 첫 메달을 안겨준 여성이다. 신두는 지난 1일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의 허빙자오를 2-0으로 눌렀다. 이로써 신두는 인도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두 개 대회 연속 올림픽 메달리스트(리우 올림픽 여자 단식 은메달)가 됐다.

그에게도 출신지 안드라프라데시주가 자체 포상 규정에 따라 300만 루피(약 4700만원)의 상금을 약속했는데, 특이한 것은 그의 뒤에 한국인 코치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중국의 허빙자오를 꺾고 포효할 때, 박태상 코치(42)가 코트 뒤에서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인도 언론과 인터뷰에서 “선수와 코치로 올림픽 메달을 딴 적이 없었기에 지도자로서 중요한 순간이었다. 나도 이 경험이 처음이다” 라며 감격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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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드민턴의 신두 선수가 동메달을 확정지은 뒤 박태상 코치에게 달려와 포옹하는 모습. 사진= 타임스 오브 인디아

신두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코치가 행복해 보인다. 그는 많은 노력을 했고 나는 그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나와 함께 있기 위해 모든 걸 버렸다”며 “가족이 그리웠을텐데 그는 항상 나를 믿었고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고 말했다. 동메달이 확정되자 신두는 눈물을 흘리며 박 코치에게 달려와 포옹하며 감사를 표했다.

권기철 국제전문 기자 speck007@viva100.com

사진=AP·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