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북유럽 이야기] 비혼모가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하다

안상욱 프리랜서 기자
입력일 2021-07-27 07:00 수정일 2022-05-14 11:06 발행일 2021-07-2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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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모도 행복한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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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 모겐센 덴마크 문화부장관. 사진= 덴마크 문화부 제공. Kristian Brasen 촬영.
2019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덴마크에서 한 단어가 화두에 올랐다. 바로 비혼모(SMC, single mother by choice)다.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2011년부터 로스킬레(Roskilde) 시장으로 재임중이던 38세의 미혼녀 요이 모겐센(Joy Mogensen)이 총선을 한 달 가량 앞둔 2019년 5월에 오덴세대학병원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지역에서 신임이 두터웠던 정치인이기에 정계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같은 당 동료들도 곱지 않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당시 코펜하겐 시의원으로 총선에 나섰던 시몬 시몬센(Simon Simonsen)은 “요이 모겐센의 결정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자아실현 프로젝트”라는 비판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사민당은 긴급 회의를 소집해 “시몬 시몬센의 글은 사민당 당론과 다른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다”며 선을 그었다. 부결되긴 했지만 그를 총선 후보 명단에서 제외하는 안을 표결에 부치기까지 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사민당 대표는 “시몬센의 발언은 동료를 향한 유례 없는 공격”이라며 페이스북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임신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임신하는데 도움을 받든 말든, 자녀 양육을 홀로 하든 둘이 하든, 이건 그냥 남들이 판단할 사안이 아닙니다.”
한 달 뒤 총선에서 사민당이 이끈 진보 진영이 이겼고 42세에 덴마크 역대 최연소이자 여성으로서 두 번째로 총리 자리에 앉은 메테 프레데릭센은 출산을 앞둔 요이 모겐센 시장에게 문화부 장관 겸 종교청장 자리를 맡겼다. 바이킹 시대 덴마크 수도이자 세계 최대 록 페스티벌인 ‘로스킬레 페스티벌’의 본고장으로 덴마크 문화의 거점인 로스킬레시에서 청년 시절부터 정치인으로 일해 온 내공이 그 자리에 어울린다는 이유였다.
요이 모겐센은 장관 임명 4개월 만인 2019년 10월 초에 예고했던 대로 출산 휴가를 떠났다. 총리는 그의 장관 역할 중 문화부 몫은 라스무스 프렌 개발협력부 장관이, 종교청장 일은 베니 엔겔브렉트 교통부 장관이 대행하도록 지시했다. 
10월 5일 밤 요이 모겐센 장관은 딸 사라를 낳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라는 숨진 채 세상에 왔다. 2020년 1월 1일에야 장관 자리로 돌아온 요이 모겐센은 엄마가 될 기회를 준 총리와 총리실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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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고 바이크에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엄마. 사진= VisitCopenhagen 제공. Viggo Lundberg 촬영.
 
◇ 홀로 엄마 되길 택하는 덴마크 여성, 그를 지원하는 덴마크 사회
덴마크에서 비혼모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비혼모가 낳은 신생아가 2011년에 907명에서 2018년에는 1148명으로 27%나 증가했다. 특히 덴마크 수도권(Hovedstaden)에서 비혼모가 많다. 신생아 41명 중 1명이 비혼모 슬하에 태어났다. 유틀란트 반도 북부 지역(Nordjylland)에서는 신생아 72명 중 1명만 비혼모 슬하에 태어났다.
덴마크에서 비혼모가 되기를 택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덴마크에서는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민간 성평등 연구기관 ‘평등조치 2030(Equal Measures 2030)’은 2019년 6월 발표한 ‘2019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성평등 지수 보고서’에서 성 평등 목표에 가장 가까운 나라로 덴마크를 꼽았다.
2019년 사민당 내각에서 여성 장관 비율은 35%다. 시가총액 100억 달러(11조 5000억 원)가 넘는 덴마크 상장기업 이사회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17.4%다. 총 매출 3억 1300만 크로네(540억 원) 이상, 전일제 직원 250명 이상인 대기업 중 35.6%는 이사회에서 남녀 비중이 같았다. 양성 임금 격차는 13.3%다. 한국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 매출 기준 100대 상장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4.9%다. 양성 임금 격차는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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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 손을 잡고 해변을 걷고 있다. 덴마크는 비혼모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다. 사진= VisitDenmark 제공. Robin Skjoldborg 촬영.
두 번째는 보편적 복지 제도다. 덴마크는 사회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구현한 대표적 복지국가다. 국민은 50%에 이르는 세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는 대신 대학까지 교육과 무상 의료 등 두터운 사회안전망에 언제든 기댈 수 있다. 정부는 2007년 ‘보조생식술 관련 보건 전문가와 의료기관의 행위와 의무에 관한 법률’(VEJ nr 9351. 보조생식법)을 개정해 인공수정도 공공의료 제도 안으로 끌어안았다. 결혼 여부나 성적 지향성과 상관 없이 아이가 없는 18~40세 모든 덴마크 여성에게 전액 국가 부담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3회까지 제공한다는 것이다. 비혼 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아 자녀를 낳을 법적 근거가 생겼다.
2018년에는 태아가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과 유전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법 조항을 없애 정자와 난자를 모두 기증받는 이중 기증을 허용했다. 레즈비언 커플 혹은 난자가 건강하지 않은 비혼 여성도 정부 지원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할 법적 근거가 생겼다.
이 법 개정으로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인공수정 규제가 진보적인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다. 외국인 여성도 보조생식술 도움으로 아이를 만나러 덴마크를 찾는다. 덴마크 보건의료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덴마크에서는 난임 시술이 3만 9975건 시행됐다. 2만 2049건은 ART 시술, 1만 7926건은 IUI 시술이었다. 8672건(약 21.7%)은 외국인 여성이 받았고 819건은 정자를 기증 받았다.
난임 시술로 태어난 신생아는 외국인을 포함해 7895명이었다. 2019년 전체 신생아(6만 742명)의 약 10%에 이르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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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사진=VisitDenmark 제공. Niclas Jessen 촬영.
비혼모는 출산 후에도 일반 산모처럼 일반 아동 지원과 특별 아동 지원, 주거 지원, 어린이집 부분·전액 지원 등을 제공받는다. 보조금 규모와 내역은 가계 소득, 곧 모친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다. 소득 수준이 낮거나 학생이라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생활비를 책정해 지급한다. 출산휴가는 출산예정일 전 4주, 출산 후 14주까지 낼 수 있다. 그 뒤에는 최장 32주 육아 휴가를 낼 수 있다. 출산 및 육아 휴직 중에는 기존 임금에 비례해 공적 연금(ATP)에서 받는다.
세 번째는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사회 풍토다. 덴마크는 성소수자 인권 보호부터 세계에서 가장 앞선 축에 속한다. 1933년 동성 성행위를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1981년에는 동성애를 국가 정신병 목록에서 제외했다. 1989년에는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시민결합 방식으로 합법화했다. 1999년에는 역시 세계 최초로 혼인한 동성 부모에게 자녀를 입양할 권리를 부여했다. 2006년에는 레즈비언 커플도 공립병원에서 인공수정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동성 결혼은 2012년 공식적으로 합법이 됐다. 2018년에는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사업에 착수했다. 
덴마크 통계청은 비혼모 가정을 포함해 37가지 유형으로 자녀 양육 가정을 분류한다. 2020년 기준으로 0~17세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덴마크 가정은 모두 77만 7149세대였다. 이 중 비혼모를 포함한 편모 가정은 11만 4105세대로 약 14.7%에 달했다. ‘가디언’은 많은 덴마크 여성이 비혼모가 되기로 선택하는 이유로 ‘낙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2015년 9월 보도했다. 
물론 비혼모가 가장 각광받는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알맞은 남편감을 찾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너무 늦기 전에 비혼모 되기를 택한다. 덴마크 정부가 국비로 보조생식술을 지원하는 대상은 18~40세 사이 아이가 없는 덴마크 여성이다. 40세가 넘으면 민간 난임센터를 찾아 자비로 시술받아야 한다. 이 마저도 45세가 넘으면 안 된다. 성공률이 극히 낮을 뿐더러 비용도 치솟고 산모에게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 사유리가 한국에 쏴 올린 작은 공 ‘비혼 출산’
한국에서 비혼 출산은 여전히 지지보다는 논란의 대상이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가 2020년 11월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 젠을 낳고 비혼모가 됐음을 알리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현행법 상 비혼 여성이 정자 기부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으나 ‘생명윤리법’ 제24조에는 ‘배우자가 있을 경우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이를 근거로 국내 의료진은 비혼 여성에게 보조생식술을 시행하지 않았다.
여성인권단체 등 비혼 출산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시대변화에 발 맞춰 비혼 출산을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가족부도 건강가족기본법상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비혼 출산 관련 정책연구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올 7월 “보편적 도덕의 테두리를 벗어난 공동체를 가족으로 포장하려 한다”며 법 개정 반대와 여가부 폐지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1만 3000명에게 지지를 받았다. 사유리 씨의 KBS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소식에 “비혼 출산을 부추긴다”며 청와대 국민청원과 KBS 시청자권익센터에 반대 글이 올라와 적지 않은 지지를 얻었다.
사유리 방송 출연은 번복되지 않았고 그녀는 5월 2일 ‘슈돌’에 아들 젠과 함께 출연했다. 
강봉규 책임프로듀서(CP)는 “비혼모 가정은 다양한 가족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전체 가구의 7.3%가 한 부모 가구이고, 이 중 절반 가량(51.6%)은 엄마와 자녀가 함께 산다. 2021년 5월에야 이런 가정이 지상파 프로그램에 등장한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이런 변화는 한국 사회의 ‘행복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비혼모가 한국 사회 발전의 시금석이 될 지 모른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정상’이 되길 강요하지 않고, 나아가 모두가 각자 처지에서 자신의 결정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제도로 뒷받침하고 포용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각자 방식대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인당 GDP 3만 달러를 넘어 경제 선진국으로 우뚝 선 한국이 다양성을 촉진해 행복 선진국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 안상욱은 누구
필자 안상욱은 덴마크 전문 미디어 그룹인 NAKED DENMARK ApS의 공동창업자이자 덴마크 전문 미디어 NAKED DENMARK 편집장, 프리랜서 기자이다. 한국과 덴마크 사이에 다리를 놓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펜하겐에서는 한식 체험 공간 ‘KOPAN’과 덴마크 현지 여행사 ‘INSIDE DENMARK’를 운영하고 있다.
안상욱 프리랜서 기자 andersen@nakeddenm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