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요즘 연예계 “이게 머선 129”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1-05-20 13:43 수정일 2021-05-20 20:32 발행일 2021-05-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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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 문화부 차장

요즘 예능 프로그램 자막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문구가 “이게 머선 129”다. 방송인 강호동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게 머선 일이구”(이게 무슨 일인가)라고 외치는 것을 한글과 숫자를 합쳐 시각화한 자막이다. 올 들어 모바일 메신저에서 가장 자주 쓰는 문구이기도 하다.

1년 동안 지속된 팬데믹 기간 집단적 분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걸 목격했다. 잘나가는 연예인에게 학창시절 폭력을 당했다는 MZ세대의 학폭 고백, 단 1회 방영된 드라마가 중국을 미화했다며 방영금지해 달라는 움직임, 여성 연예인의 과한 성적 농담과 의미 없는 손짓이 남성혐오를 불러일으켰다는 집단 반발, 심지어 방송조차 되지 않은 드라마가 민주화운동을 폄훼했으니 방송 금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다.

대중의 분노로 인한 긍정적인 학습효과도 적지 않다. 젊은 연예인들은 외모나 능력보다 인성의 가치를 깨닫게 됐고, 남성연예인의 과한 성적농담에 여성들이 분노하듯 남성들의 불쾌함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실존인물을 내세운 드라마는 고증에 고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명제도 다시금 확인했다.

그렇지만 갈수록 과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분노의 결과가 ‘빌런’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억 예산의 드라마 제작이 취소되면 피해는 드라마 생태계의 가장 하위에 속하는 일용직 근로자나 단역배우들에게 돌아간다. 의미 없는 손짓, 농담도 혐오라고 주장하면 어떤 개그맨이 웃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서로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십수년 전 학창시절 사건 때문에 한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는 편성이 기약 없이 미뤄지기도 했다.

대중의 집단 움직임의 피해자들은 어디에서 보상 받아야 할까. 모두가 조금만 자중하기를. 그래서 하반기에는 “이게 머선129”를 그만 외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조은별 문화부 차장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