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코로나 ‘집콕’ 시대, 독서 삼매경 빠져볼까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0-12-01 18:00 수정일 2021-06-12 03:28 발행일 2020-12-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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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 한국인이 사랑하는 두 작가 신작

(사진출처=게티이미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일일 신규확진자 400명 시대. 3차 대유행을 목전에 두고 1000만 서울 시민이 멈추면서 ‘집콕’의 지루함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도 이어지고 있다. TV와 OTT채널, 유튜브도 좋지만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며 책장을 넘겨보는 건 어떨까. 때마침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기욤 뮈소의 신간이 출간됐다. 개성강한 필체로 자신만의 색을 발산하는 두 작가인 만큼 모처럼 종이의 질감을 느끼길 추천한다. 

하루키의 신작 ‘일인칭단수’는 ‘여자없는 남자들’ 이후 6년만에 선보이는 단편 8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각 단편의 공통점은 화자가 일인칭 주인공 ‘나’로 시작한다는 것. 책장을 넘기는 순간 하루키만의 강한 색채가 물씬 느껴진다. 첫 단편 ‘돌베게에’부터 화자인 ‘나’가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인지 작가 그 자신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돌베게에’는 작가 지망생인 화자가 묘령의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다.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1만 4500원  사진제공=문학동네

‘나’는 여성이 직접 쓴 단카(하이쿠와 더불어 일본 전통 시가를 대표하는 단시)를 모은 ‘가집’을 세월이 지나서까지 품고 있다. 하루키답게 결론은 ‘허무개그’처럼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창작인지 경험인지 모를 내용이 ‘노르웨이의 숲’이나 ‘1Q84’ 같은 ‘하루키월드’ 장편의 근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에세이와 단편에서 자신의 취향을 녹여낸 것도 여전하다. ‘찰리 파카 플레이즈 보사노바’는 재즈팬인 ‘나’가 알토색소폰의 대부 찰리 파커가 요절하지 않고 음악활동을 계속한다는 발상으로 가상의 음악평을 대학잡지에 기고하는 이야기다. ‘위드 더 비틀스’는 전 세계가 비틀스 열풍에 휩싸인 고교시절, 비틀스 LP판을 들으며 걷던 소녀와 조우한 장면을 묘사했다. 

대학시절부터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었다는 작가의 팬심이 돋보이는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에서는 성적이 썩 시원치 않은 야구단을 응원하는 ‘나’를 표현한다. 실제로 하루키는 어린 시절 한신 타이거스를 응원하다 대학 진학 이후 야쿠르트 스왈로스(당시 산케이 아톰스) 팬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학생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재즈와 클래식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으며 정치보다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는 작가의 일상을 공유하는 재미가 톡톡하다. 

수십 년 간 전 세계 독자들과 공유한 내용이지만 매 번 비슷한 듯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하루키 특유의 화법은 경이롭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희를 넘긴 작가의 창작이란 이런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필체, 세상을 관조하는 화자의 메시지도 반갑다. 

그는 책 속에서 청춘부터 하루키와 동시대를 살아온 독자들까지 폭넓은 독자층이 공감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곤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보험 적용이 안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돌베게에)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같은 문구를 통해 사랑에 빠진 청춘의 마음을 톡 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중략)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 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돌베게에)나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데서 나온다”(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같은 문구에서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작가의 통찰력과 관록을 뿜어낸다. 

‘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1만 5000원  사진제공=밝은세상

프랑스와 한국에서 출판가를 휩쓴 ‘흥행보증수표’ 기욤 뮈소도 한국에서 17번째 장편소설을 펴냈다. 

신간 ‘인생은 소설이다’는 ‘아가씨와 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에 이어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다. 기욤 뮈소는 이번 작품에서 ‘작가의 삶과 고민’을 적극적으로 풀어나갔다. 

소설 속 주인공 로맹 오조르스키는 열아홉 권의 소설을 발표한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다. 

부모가 일찍 이혼해 편모 슬하에서 성장했다는 점 역시 기욤 뮈소 본인과 유사하다. 소설은 딸 캐리의 실종이라는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스터리와 반전을 거듭한다. 

현실과 픽션에서 마치 전지적 작가시점 소설 속 마리오네트가 된 것 같은 주인공의 심경에서 창작의 고통도 느껴진다. 판타지와 로맨스, 스릴러에 이어 더 깊고 풍성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던 작가의 속내도 읽힌다. 

캐리의 실종을 극성스럽게 보도하는 프랑스 언론과 각종 가설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의 신상털이에서 유명인을 둘러싼 한국과 프랑스 언론의 공통점이 느껴져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프랑스 언론 렉스프레스 지는 ‘인생은 소설이다’에 대해 “작가와 그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 사이의 설왕설래를 마술사적인 관점에서 맛깔나게 요리한 야심찬 글쓰기”라고 평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