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책임만 지우는 금융당국

이정윤 기자
입력일 2020-05-25 14:19 수정일 2020-05-25 14:20 발행일 2020-05-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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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 때 우산 속으로 들어간 금융당국
작은거
이정윤 금융증권부 기자

코로나19로 우리나라는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생활비 지원과 소비진작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 제도를 시행했다.

지원금 신청방법은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카드사를 통한 체크·신용카드 비율이 높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카드사에 신청하면 되는데다, 모바일을 통해 간편하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어서다.

쏟아지는 정부 지원금에 카드사들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퍼붓는 민원에 비해 정부 정책에 걸맞는 시스템을 구축하기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정부 지침에 의해 만들어진 ‘기부 동의’ 버튼에 실수로 기부하게 된 사람들의 문의와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카드사들이 시스템을 개선해야만 했다.

카드사들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면 커피 쿠폰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내놨지만, 정부는 고객 유치 경쟁을 벌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마케팅 자제령’ 엄포를 놨다. 뒤늦게 카드사들은 고지한 이벤트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주도하는 간편결제 수단 ‘제로페이’는 지원금 유치에 대대적인 이벤트를 벌여 이중잣대 논란을 불렀다.

이번엔 금융회사들에 ‘외형확대 자제’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금융권은 외형 확대를 자제하고 충당금과 내부 유보를 늘리는 등 손실 흡수 능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배당이나 성과 보상 등은 미루고 실물경제 지원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엔데믹(주기적 발병)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상황에서 경쟁력 제고를 추진해야하는 금융사들에게 이같은 말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이라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금융당국이 혼돈과 논란의 당사자가 되는 건 어딘가 주객이 전도된 듯하다. “코로나19는 처음이라서…”라는 말은 금융당국이 해야 할 변명이 아니다.

이정윤 금융증권부 기자 jyoo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