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례투표 용지에 1·2번은 없고 '꼼수'만

표진수 기자
입력일 2020-04-06 10:20 수정일 2020-06-15 11:09 발행일 2020-04-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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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진수 정치경제부 기자

“비례투표 용지가 길어졌다고 하는데, 왜 1,2번은 없어?” 지난 5일 본지 기자가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자초지종 상황 설명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몰라 복잡해”라는 답 뿐이었다. 그래서 간단 명료하게 정리해 설명했다. 거대 정당이 ‘꼼수’를 부렸다고.

21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4·15 총선에 등장한 48.1cm 비례 투표용지에 47석의 비례대표 의원을 목표로 35개 정당이 출사표를 던졌다. 투표용지가 너무 길어 분류기도 쓸 수 없어 수작업으로 개표해야 한다.

이번 비례 투표용지는 맨 위칸이 ‘기호 3번’부터 시작된다. 기호 1번인 민주당과 기호 2번 통합당이 모두 비례위성정당을 추진하면서 자체 비례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20대 국회에서 20석으로 세번째로 의석수가 많은 민생당이 기호 3번으로 비례 투표용지 맨 윗자리를 선점하게 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다당제를 위해 처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제’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속을 살펴보면 거대 양당의 ‘꼼수’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순서 차이가 있지만, 위성정당 설립 꼼수는 민주당과 통합당 두 거대 양당이 주도했다. 비례의석을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위성정당에 의원을 꿔주고, 자체 비례후보를 내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정치자금도 챙겼다. 미래한국당은 보조금 지급 직전 통합당에서 의원 3명을 추가해 ‘원내교섭단체 보조금’을 확보했다. 더불어시민당도 민주당에서 의원 8명을 데려와 보조금을 늘렸다.

두 거대 양당의 꼼수에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각각 행사하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큰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어느 정당을 선택해야 할지. 이 때문에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정치권 안팎에서는 21대 국회에서 선거법이 다시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총선 레이스가 시작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다만 22대 총선에서는 거대 양당에서 꼼수를 부리지 못하고 국민들의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정을 기대한다.

표진수 정치경제부 기자 vyvy@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