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 테마주에 꼬이는 '기생충'

이은혜 기자
입력일 2020-02-12 14:13 수정일 2020-02-12 14:14 발행일 2020-02-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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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금융증권부 기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한 ‘기생충’ 영화의 핵심 골자는 사회의 양극화다. 재벌이 되고 싶었던 빈민층이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일가족이 다치거나 숨지는 장면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찝찝하다’, ‘불편하다’고 말했다. 영화가 사회 현상을 제대로 꼬집었다는 증거다.

테마주가 만연한 최근의 증시는 영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명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고수익을 내기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이 확산되는 시기에는 마스크 관련 종목과 손 소독제 제조업체를 찾고, 총선을 앞두고는 각 정치인과 관련된 종목들을 찾아 나선다. 영화 속 여주인공이 재벌가의 미술 과외선생님으로 들어가기 위해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를 달달 외웠듯, 개미들은 “신종 코로나엔 ○○사 총선에는 △△사”를 외우는 것이다.

재벌가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속였던 주인공들의 꿈이 허상이었듯, 기업의 본질가치와 관련 없는 테마주의 주가 급등 또한 매번 허상이었다. 그리고 다치는 건 늘 개미들이었다. 선거철이 끝나면 당선되지 못한 후보자 테마주 뿐만 아니라 당선된 후보자의 테마주도 함께 급락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다치는 장면은 공교롭게도 재벌가의 파티 현장이다. 테마주 현상으로 누군가는 떼돈을 벌었으나, 누군가는 다쳤다.

처음엔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테마주에 목 매는 개미들이 답답했다. 그러나 한 취재원이 정치테마주 현상이 근절되려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경유착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선, 나의 화살이 과녁을 잘못 겨누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 국면에서 그저 돈을 벌고 싶은 개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부자가 되고 싶은 ‘기생충’은 올해도 어김없이 종류도 다양한 테마주에 ‘기생’하고 있다.

이은혜 금융증권부 기자 chesed71@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