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한국 문학계의 아픈 손가락 ‘이상문학상’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2-07 17:00 수정일 2020-02-07 17:00 발행일 2020-02-07 13면
인쇄아이콘
[트렌드 Talk]
Untitled-10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임을 통감합니다.”

2020년 새해부터 문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제44회 이상문학상 불공정 계약 파문이 한달여만에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4일 오후 이상문학상을 주최하는 문학사상사가 다소 늦은 사과문과 공식 입장문을 밝히며 “올해 이상문학상은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지난 1월 불공정 조항을 담은 계약서 문제로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며 파문을 맞은 지 한달여만이다.

문학사상사는 입장문에서 기존 이상문학상 수상자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한 새로운 계약과 대사 수상작의 ‘저작권 3년 양도’ 조항을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정정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수상작의 저작권 관련 세부조항은 시대 흐름과 문학독자의 염원, 작가의 뜻을 존중해 수정·보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과문이 늦어진 데 대해 경영 악화로 인한 편집부 직원 대거 퇴직, 일관되지 못한 수년 간의 수상 안내 및 합의서 전달 과정 파악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이어 폐습과 관행, 운영 미흡으로 불거진 일을 ‘직원의 실수’라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사실도 인정하고 사과했다.

문학사상사의 공식사과와 변화 의지 표명에도 1월 31일 자신의 SNS에 문학계의 불공정한 관행과 불신, 부당함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절필을 선언한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는 “선택을 되돌리지 않겠다”고 전했다.

Talk_2020_2_7

지난해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윤이형 작가는 1월 31일 스스로에게 내려진 평가의 정당성, 열심히 하는 데도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부당함과 부조리에 일조해 이득을 얻게 되는 것 등에 대한 회의감을 전하며 절필을 선언했다. 그는 문학사상사의 사과와 공식입장 발표 다음날인 5일 SNS에 계약과 약속들의 파기로 발생할 “소송까지 각오하고 (1월 31일의) 입장문을 썼다”고 밝히며 “동료 작가들에게 끼친 절망감과 손해도 되돌릴 수 없다”고 절필 의지를 굳건히 했다.

윤이형 작가 뿐 아니라 최초 저작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수상 거부 의사를 밝혔던 김금희·최은영 작가는 이상문학상 수상자·수상후보·심사대상 어디에도 거론되지 않을 것과 문학사상사 관련 어떤 업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수상했던 황정은 작가 역시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 운동에 나섰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등 출판계는 전근대적인 관행 타파를 위한 작가 단체와의 개선 방안 논의, 저자들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합리적인 표준 출판계약서 개선, ‘창작자와 편집자를 위한 저작권 실무 가이드북’ 발행 등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의 이름을 달고 40년을 넘게 한국문학가들에게 주어졌던 상은 신뢰와 권위를 잃었고 모두에게 아픈 손가락이 됐다. 이상의 시 ‘오감도’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골목을 내달리던 ‘아해들’처럼 상처받은 한국 문학계에 ‘날개’가 다시 돋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