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명성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다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0-02-05 14:18 수정일 2020-02-05 14:26 발행일 2020-02-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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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국제부 차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이 발생한지 두 달여 만에 중국 내 누적 확진자 수가 2만 명을 돌파했다. 확산 속도가 2003년 ‘사스’ 때보다도 빠른데, 이 통계조차도 축소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은폐와 대응력이 도마에 오르면서다.

중국 연구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미 사람간 전염이 확인됐지만, 정부 당국은 최근까지도 부정적인 소문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며 사태를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신종코로나 사태를 초기에 경고했던 한 중국 의사는 거짓 소문 유포자로 낙인까지 찍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쉬쉬하는 동안 춘제(春節) 연휴를 앞둔 대이동에서 질병의 발원지인 우한이 봉쇄되기 전에 500만 명이 빠져나갔고, 수백 만명은 사람간 전염이 없다는 당국의 말만 믿고 있다가 우한에 갇혔다.

요즘 중국인들은 1986년 구소련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미국 드라마에서 진실을 은폐하는 소련 간부들의 모습을 보며 중국 체제를 비판한다고 한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한숨 돌린 시진핑(習近平) 중국 지도부가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국민의 분노와 실망감이라는 내부의 더 큰 적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체르노빌 사태가 소련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결국 중국 지도부도 관리 능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했지만, 사태를 초기에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했더라면 일이 이 정도로 커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세월호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투명성’이란 권력의 필요에 따라 확보할 수도, 확보하지 않을 수도 있는 도구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검열과 은폐, 축소가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한다. 그것이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이 아닐까.

김수환 국제부 차장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