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코멘트] 뮤지컬 ‘마리 퀴리’ 김태형 연출 “여성 서사극, 필요한 이유가 필요한가요?”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1-31 21:00 수정일 2020-02-01 09:08 발행일 2020-01-3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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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김태형 연출(사진=브릿지경제 DB)

“필요한 이유를 굳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뮤지컬 ‘마리 퀴리’(2월 7~3월 29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의 김태형 연출은 최근 몇 년 동안 주목받고 있는 여성 중심 서사, 눈에 띄는 여성 캐릭터, 젠더프리(성별에 상관없는) 캐스팅 등에 대해 필요한 이유가 필요한지를 지적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인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루는 작품이다. 마리 퀴리(김소향·리사·정인지,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남편 피에르(김지휘·임별), 폴란드 출신의 라듐시계공장 언다크 직공 안느(김히어라·이봄소리), 언다크의 사장인 루벤(김찬호·양승리) 등이 라듐 발견의 명과 암, 위대한 업적과 이면 등 경계에서 갈등하고 공감하고 고뇌하는 여정을 따른다.

뮤지컬 마리 퀴리
뮤지컬 ‘마리 퀴리’(사진제공=라이브)
“여성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도 남들의 이야기를 이제 들려주는 것뿐이다’ ‘괜찮다. 나아가라’ 얘기해 주는 것이 공연들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리곤 “지상파에서 예전에는 어렵지 않게 흡연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오지 않는다. 과거 영상들은 모자이크 처리되기도 한다”며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예를 들었다.

“세상은 그렇게 하나씩 변해가고 있어요. 여성 서사극이 필요한 이유는 다른 게 없어요. 그게 사람들이, 세상이 더 나아지는 길이기 때문이죠. 전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잘 몰라요. 그저 알려고 노력할 뿐이지만 아주 자주 여전히 모르는 남자가 되거든요. 방법은 공부하고 공감하려 노력하고 애쓰는 거예요. 다만 더 근원적인 해결책은 여성 창작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여성 서사’ ‘젠더프리’가 마케팅 요소로 변질되거나 무분별하게 젠더프리 캐스팅을 하거나 다소 성근 만듦새로 실망을 안기기도 한다는 지적에 대해 김태형 연출은 “무분별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그것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던 시기에 ‘왜 민주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가?’에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 얼마나 될지 싶습니다.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히어로물 영화들에 대해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가치있을까요? 좀 무분별하고 성근 모양새면 어떤가요. 젠더프리, 여성캐릭터 부각을 시키지도 않으면서 성근 모양새로 만든 공연들이 훨씬 더 많잖아요.”

그리곤 “이런 테마로 정말 좋은 공연들이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만들어질 것”이라며 “그러려면 성글고 그저 실험에 그치고 뭔가 아쉽더라도 일단 많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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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스튜디오 A에서 진행한 뮤지컬 ‘마리 퀴리’ 시츠프로브에서 새 넘버 ’그낸 내게 별’을 부르고 있는 마리 퀴리 정인지(왼쪽)와 안느 이봄소리(사진=허미선 기자)

“마케팅 요소로만 쓰이면 또 어떤가요. 그저 유명한 누구, 유명한 소재가 쓰인다는 것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는 공연들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아요. 그간 의식하지 못하고 행해왔던 수많은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마케팅이 얼마나 많았는데 여성서사, 젠더프리만 마케팅이라고 폄훼돼야 할까요?”

이렇게 반문한 김태형 연출은 “그동안 해왔던 관습적인 것들, 누려왔던 것들에 대한 위기와 걱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나도 그랬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며 “언제든 아주 쉽게 그동안 해왔던 저의 일들이 사그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동안 그런 일들을 수많은 여성들이 겪어 왔어요. 자주 성근 공연을 만들어 버려 실패하지만 창작자로서 저는 그저 (마케팅 요소로만 쓰이거나 성근 만듦새로 인한 비판)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여성 중심 서사, 젠더프리 공연들을 할 때는 더 힘을 ‘빡’ 주고 긴장해서 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