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靑이 자초한 기업은행장 '낙하산 논란'

이정윤 기자
입력일 2020-01-13 14:52 수정일 2020-01-13 14:53 발행일 2020-01-14 19면
인쇄아이콘
작은거
이정윤 금융증권부 기자

인사철을 맞은 금융권에서는 인사이동과 조직개편이 한창이다. 그 중에서도 잡음이 계속되고 있는 곳은 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에는 지난 2일 외부 인사가 새롭게 조직의 장으로 임명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두 번째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던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다.

그간 기업은행에선 2010년부터 3차례에 걸쳐 내부 인사가 승진을 통해 행장에 올랐다. 하지만 10년에 걸쳐 낙하산 인사를 막아냈던 전통이 윤 행장을 계기로 깨지면서 기업은행 노조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윤 행장은 열흘 넘게 본사로 출근하지 못하고 은행 밖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신세다.

기업은행장은 중소기업은행법상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청와대가 임명한다. 부행장과 자회사 사장 등 누구라도 기업은행장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행장 선임 시기가 되면 대상자들은 실무를 뒷전으로 두고 정치인을 만나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과 2016년에도 각각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내정하려 했지만 노조와 시민단체 그리고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의 강한 반대로 철회한 바 있다. 현 상황은 7년 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 같은 것”이라고 말한 것이 무색할 정도다. 노조 친화적인 문재인 정부에서 사전에 설득 없이 낙하산 관료 인사를 밀어붙이는 것은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출근 저지로 인한 경영 공백이 길어지면서 임기가 이미 끝난 계열사 CEO 3명과 부행장급 인사가 늦어지고, 기업은행은 올해 경영계획도 제대로 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윤 행장이 어떤 식으로 노조와 화해해 ‘함량미달 낙하산’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윤 행장은 언제쯤 은행 구성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본사로 출근할 수 있을까.

이정윤 금융증권부 기자 jyoo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