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진家 '성탄절 소동'이 남긴 것

이효정 기자
입력일 2020-01-01 13:19 수정일 2020-01-01 13:20 발행일 2020-01-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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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산업IT부 기자

‘사과문’이라는 간결한 제목 아래 세 문장이 담겨 있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죄합니다. 조원태 회장은 어머니인 이명희 고문께 곧바로 깊이 사죄를 했고, 이명희 고문은 이를 진심으로 수용했습니다. 저희 모자는 앞으로 고 조양호 회장님의 유훈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내놓은 공동 사과문 내용이다. 모자의 ‘불미스러운 일’은 지난해 12월 25일 조 회장이 어머니인 이 고문의 자택을 찾았다가 경영권 다툼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유리 등이 깨지고 이 고문이 상처를 입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을 말한다. 그에 앞서 12월 23일에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 회장이 아버지의 공동 경영 유훈을 어겼다”는 내용의 입장자료를 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동안 한진 가문은 ‘땅콩회항’, ‘물컵 갑질’, ‘오너 갑질’, ‘부정 편입학’ 등 마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끊임없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왔다.

기업 경영에 대한 자질이 한없이 부족해도 재벌가에서 태어난 핏줄이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세습하는 후진적인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인사철이 되면 기업들은 파격적으로 젊은 인재를 발탁하거나 여성 임원을 늘렸다는 내용의 자료를 내며 ‘변화’를 꾀한다고 하지만, 정작 손에 쥔 경영권을 놓을 생각은 없는 ‘핏줄 승계’는 계속되고 있다.

한진그룹은 주주들의 힘으로 움직이는 상장사다. 한진 가문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지난해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고 조양호 회장은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바 있다.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다면 경영권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의미있는 재벌 개혁이 절실한 때다.

이효정 산업IT부 기자 hy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