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진짜보수 가짜보수> 송희영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19-12-21 07:30 수정일 2020-05-29 11:33 발행일 2019-12-1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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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품격있는, 힘 있는 보수를 만들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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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저자는 보수 신문 조선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편집인을 지낸 골수 보수주의자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도 지금 우리의 보수 세력들은 철학도 없고 품격도 없고, 그렇다고 세(勢가 있는 것도 아닌 형편없는 존재들이다. 저자는 보수의 품격을 다시 세우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오랜 동안 ‘가짜 보수주의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고 일갈한다. 보수 정권들이 권력 욕심에 뼛속 깊이 새겨진 난폭성을 자주 노출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보수도 이제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며, 보수 재건을 위한 30년 장기플랜을 주문한다. 저자는 보수 재건축을 위해선 학문적 기초를 다지고, 문화적 우군을 포섭하고, 보수의 허브를 새롭게 만들어,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선 안된다고 조언한다. 보수의 원령이라 할 조선일보에서 가장 보수의 수혜를 입었을 법한 저자의 ‘보수 비판’이 조금은 껄끄럽기도 하지만, 보수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작금의 ‘보수 분열’, 누구의 책임인가?

* 보수란 무엇인가 - 영국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은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미지의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시도된 적이 없는 것보다는 시도해 본 것을, 신비로운 것보다는 사실을, 무한한 것보다는 제한된 것을,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을, 유토피아적 축복보다는 현재의 웃음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칠 영국 총리는 “과거를 사랑하고 현재를 혐오하며 미래를 두려워한다”는 말로 보수주의자의 신념을 잘 요약 표현했다.

* ‘정치적 자폐증’ 앓은 ‘정치 신데렐라’ 박근혜 - 여러 증언을 언급하며 저자는 박 전 대통령의 자폐증상이 속속 드러났다고 비판한다. 다른 사람과 식사하면 자주 체한다는 수석비서관의 말을 인용해 ‘혼밥’으로 대변되는 그의 폐쇄성을 지적한다. 그를 대통령을 만든 공신이었던 원로 7인회 멤버들조차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간 후로는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했다고 불평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고건 전 국무총리 조차 “그는 대통령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버지 기념사업이나 하셨어야 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저자는 박 전 대통령이 지적 능력과 소통 능력, 판단력 모두 국가 지도자로서 미달이었다고 혹독하게 평가했다.

* 박근혜의 죄 ‘보수 분열’ -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단지 정권만 잃은 것이 아니라, 보수의 이미지를 만신창이로 추락시켰다고 저자는 비판했다. 보수가 미련하고 고집스럽다 못해, 무능하고 고루하며 구제불능이라는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보수 진영을 분열시킨 점이라고 지적한다. 극단 지지 세력에 의존하는 바람에 중도적 보수, 온건한 보수, 경제적 보수 세력이 진영을 떠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 미디어와 여론의 변화를 못 읽은 보수 - 탄핵 사태를 몰고 온 언론의 국정농단 보도는 보수 정권이 평상 시 언론을 대하는 시각, 기자를 깔보는 태도가 원인이었다고 저자는 확언한다. 때문에 언론계의 집단 반발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인에게 가차 없이 복수한 권력자에게 언론이 보낸 비싼 답례품이 국정 농단 보도였다는 것이다.

* 1등 국민, 2등 국민 - 저자는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대기업 정규직과 그 가족들을 1등 국민이라고 정의했다. 2등 국민은 계약직과 비정규직, 일용직이다. 1등과 2등 국민의 격차는 교육과 복지, 자산배분, 금융관행 등에서 모두 차이가 난다. 싱가포르는 리콴유 총리가 2등 국민 계층을 달래려 공기업 주식을 국민주 형태로 나눠주었다. 영국의 대처 총리도 브리티시텔레콤 주식을 분배했고, 공공임대주택을 입주자에게 헐값에 팔았다. 저자는 “진정한 보수라면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2등 국민을 보듬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어야 했다”고 일갈한다. 2등 국민이 거사를 일으킬 지 모른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였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 재벌 특혜에 치우친 알짜 공기업 매각 - 이명박 대통령은 대처의 공기업 매각 모델을 흉내 내 철도를 시작으로 산업은행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매각을 추진했다. 여기서 30조원 마련해 중소기업 지원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하지만 철도와 산은 민영화는 중도 포기했고, 알짜 공기업들은 재벌 특혜로 끝났다. 박근혜도 ‘한국의 대처’가 되겠다던 꿈과는 달리, 철도 노조 파업에 무릎 꿇고 철도 민영화 정책을 포기했다. 대처는 탄광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불법이 난무하는 나쁜 이미지가 노조에 쌓이도록 방관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결국 대처의 가장 큰 업적은 노동당을 개조시킨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가 됐다.

* 시대착오적 국정교과서 - 북한 같은 독재 체제도 아닌 나라에서 국정교과서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국정교과서가 순수한 의도로 출발했다면, 먼저 보수 진영의 찬성을 받아내는 작업부터 진행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검정 교과서의 평향성 문제부터 집중 부각시켰어야 했다고 강조한다. 보수주의는 역사와 관습, 전통을 보물로 삼아야 하는데 국정 교과서 사태로 보수 정권이 오히려 역사 기반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연히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 보수를 죽인 ‘보수의 다섯 도둑(5적)’

* 보수진영에 치명상 안긴 ‘다섯 악당’ - 국가정보원과 검찰 친박 재벌 관료집단은 모두 각자 보수주의 이념 아래 육성되거나 형성된 세력과 조직이다. 사회 안정과 국가 발전에 공헌했으나 시대 변화에 맞춰 변신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보수 세력이 다시 일어서고 싶다면, 이 다섯 악당이 보수진영 내부에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솔직히 되짚어보고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정치공작의 총본산’ 국정원 - 한국 보수정권에서는 정보기관이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최고 통치기관이라는 생각이 줄곳 지배해 왔다. 관제 여론조작은 역대 보수정권의 단골 상품이었다. 통진당을 결박, 해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이념적 균형추를 붕괴시키는 우를 범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통진당이 과연 민주공화정을 뒤집을 만큼 내란 음모를 꾸몄는지 의문이라는 언급까지 한다. 어쨋든 국정원이 민주당과 통진당을 강제 이혼시킴으로써 민주당은 ‘종북’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문재인 후보는 특전사 군복을 입고 나와 안보 대통령 브랜드를 내세워 결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통진당 해산의 혜택을 문재인이 몽땅 독차지한 셈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정 목적을 갖고 수집한 정보로 수사권을 행사하는 권한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 ‘권력의 사냥개’ 검찰 - 5.16 쿠테타 이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어 검사가 영장 청구권을 독점하게 되면서부터 검찰이 수사부터 공소권, 공소 유지권을 독점할 수 있게 됐다. 검찰 공안부는 정보부 산하 조직처럼 움직였다. 특히 박근혜의 검찰은 권력 호위와 반대파 사냥을 동시에 수행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검찰의 핵우산 아래 친박 세력은 안전지대에 있다는 선민의식 뚜렷했다고 말한다. 최순실의 존재를 덮으려 검찰을 다그쳤고 검찰은 지시에 순종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도 앞선 보수정권의 비리를 캐는 데 골몰하며 정권의 저격수로 나섰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경찰 수사는 정치보복으로 직결되었고, 안희정 이재명 등 경쟁자들까지 제거됐다. 저자는 “권력자가 검찰 개혁을 하고 싶었다면 정치보복, 정적 제거 업무를 검찰에 맡기는 일은 멈췄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청와대 하명조사’ 사실이 밝혀지면 담당 검사를 언제든 처벌할 법 조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친박왕국의 꿈 ‘친박’ - 친박에게 중요한 것은 여야 간 의석보다 친박 의석 수 였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선진화법 개정안도 친박 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하고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했던 사안 임을 까맣게 잊고 있다고 저자는 공박한다. 친박은 김무성 유승민 등 비박계를 도려내고 새누리당을 친박 정당으로 변형시킨 뒤 박정희-박근혜를 이을 3대 후계자를 옹립할 꿈을 꾸고 있었던 듯하다고 비꼬았다. 친박은 종종 집단 망상에 빠진 컬트(특정 취향이나 종교를 갖고 뭉친 골수집단) 증상을 보였다고 날선 비판을 한다.

* ‘권력붕괴의 지뢰밭’ 재벌 - 박정희~노태우 대통령 시기로 대별되는 1기 보수정권의 재벌관은 “재벌은 모두 우리가 키웠다. 고로 재벌이 벌어들인 돈은 내 것이다”였다. 비교적 깨끗했다던 박정희도 영남대와 어린이회관 등을 자녀들을 위한 개인 재산으로 따로 챙겼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저자는 총수와 총수 일가가 챙겨가는 배당금과 연봉이 종업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 총수이익과 사원이익의 불일치가 심각했고, 3세와 4세 총수들의 자질 논란과 함께 재벌과 보수정치의 유착으로 부패공범 전선이 형성되었다고 비판한다.

* 탄핵 불씨 던진 악동 ‘관료’-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는 해양수선부나 해경 공무원 책임자를 문책하지 않고 무능한 공무원 집단에 수습을 맞기는 오판을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문책을 최소화하는 게 자신의 책임을 줄이는 길이라 오판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사과도 너무 늦었다. 사과 방식도 국무회의 자리에서 죄송스럽다는 말 보다 TV 생중계를 통해 진솔 되게 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관료사회는 변화로 얻을 긍정적인 성과보다는 변화를 거부할 현실적 이유를 대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대로 가자”는 현상유지가 공무원의 행동강령 1호라고 일침한다. 책임을 묻지 않는, 과잉 신분 보장부터 손봐야 한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리드할 새로운 보수가 필요하다

* ‘보수의 스타’를 키워야 - 미국은 조던이나 마이클 잭슨을 이용해 보수 이미지를 고양했다. 스포츠나 문화의 영웅들을 통해, 보수주의자는 착하고 보수주의는 편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생활보수’ 세력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는 문화를 정치판의 액세서리 정도로 여겼다. 청와대 홍보 이벤트나 선거유세장의 군중 동원에 이용하는 정도로 취급했다. 이들을 ‘아랫것들’로 보는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보수가 김제동 김미화 같은 재담꾼의 TV 출연을 막는 데만 열중했을 뿐, 정작 보수 스타를 키우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 해묵은 반공에만 집착해선 안돼 - 미국과 유럽 보수진영은 반공 노선을 버리고 반 이슬람, 반 테러 정서로 뭉쳤다. 일본도 공산주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 중국의 위협을 앞세운다. 반면에 우리 보수세력은 사회주의 혁명 열기가 소멸된 이후, 북한을 어떻게 다룰 줄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반공 말고, 공동체를 단결시킬 새로운 이슈를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 보수세력이 알아야 할 네가지 상황변화 - 첫째, 저성장 기조의 정착이다. 국민에게 고도성장의 배당금을 골고루 분배할 수 있는 경제기반이 사라졌고, 친재벌 성장 노선을 그대로 끌고 갈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둘째는 공산주의의 소멸이다. 반공노선의 유통기간은 끝났다는 뜻이다. 셋째, 강대국 중국의 등장으로, 무조건적인 친미 노선의 시효도 끝나가고 있는 얘기다. 넷째,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급변이다. 최근 20년 새 고령화 저출산이 가속화되면서 기초 공동체인 가족이 해체되었고, 이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개인 중심 사고로 바뀌면서 어설픈 애국주의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 보수가 성공하려면 - 지킬 것은 지키되 고칠 것은 고치겠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선 인간 본성에 충실해야 하며, 인내심에 약한 국민성도 고려한 보수 철학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두번째는 국가 보수주의와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보다 국가를 앞세우던 이념을 버려야 하며, 국가 안보와 함께 개인 안보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국민보수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융통성 있는 노선 수정이다. “변하라. 그렇지 않으면 보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심해야 한다. 네 번째는 보수주의가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지역, 연령층 전용물이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이 다시 일어나려면 50세 이상 전용 티켓을 버리고 모든 연령층이 사용할 수 있는 티켓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 30년 장기플랜 세워야 - 저자는 보수진영 재건축에 적어도 30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 386 운동권이 싹을 티우고 성장해 문재인 정권의 핵심에 도달하는 기간이 30년이었고, 1950년대 시작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이 레아건 대통령을 만들어낸 기간도 30년이었다고 말한다. 보수진영 장기 재구축 위해 저자는 우선 학문적 기초를 다지고, 문화적 우군을 포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가 등에 보수의 허브를 만들어야 하며, 스타 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보수적 대중을 모아야 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권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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