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유시민과 도올, 통일·청춘을 말하다> 김용옥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19-12-04 07:30 수정일 2020-05-29 11:36 발행일 2019-12-0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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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이 극찬한 책 … 철저히 그들의 시각에서 본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

文 대통령이 극찬한 책 … 철저히 그들의 시각에서 본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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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

이 책은 지난 10월 4일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과의 공개대담을 엮은 책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주말을 낀 휴가 때 읽어보고 극찬해 주목을 끌었던 책 중의 하나다. 도올 김용옥 스스로 “이 책은 한국지성의 진보된 모습을 과시하고 있는 통쾌한 역전의 장(場)이다”라고 호언할 만큼, 두 재인(才人)의 완벽한 호흡과 서로에 대한 존경심으로 만들어졌다.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위상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히 그 쪽 시각에서 쓰여졌기에 읽다가 가끔 일시적 호흡곤란을 경험하기도 했다. “북한은 주체적이고, 남한은 비굴하다”라든가, “아직도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지도 않은 천안함 침몰사건을 빌미로…”하는 대목에선 한순간 숨이 막히기도 했다. 김용옥·유시민 친화적 청중들과 함께 하는 대담이었던 까닭에, 팬들을 의식한 ‘도’를 넘어가는 극단의 표현들이 자주 걸리기도 했다. 북한에 관대하고 대한민국을 저평가하는 이 진영 논리를 어떻게 하면 깰 수 있을까. 보수도 이 정도 대담을 할 사람들이 있을까. 혼돈스럽다.    

◇ 도올의 북한 체험기 … “김정일과 두번이나 악수했다”

* 김정일 앞에서 안숙선과 사랑가를 부르다 -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방문 때 일행은 백화원으로 김정일의 초대를 받았다. 문정인 교수가 술잔을 들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가려다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는 것을 보고는, 술잔 대신 명창 안숙선을 대동하고 헤드 테이블로 가 안 명창의 ‘사랑가’에 장단을 치며 즐겼다고 회고한다. 김 위원장이 앉은 식탁을 북으로 두드리며 반주했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 두번이나 악수를 했다며 감격해 했다.

* 북한이 유토피아? - 저자는 북한 사회가 플라톤이 말하는 유토피아와 비슷한 듯 하다고 말한다. 유토피아는 라틴어 표현인데 희랍어의 부정사 우(ou)와 장소(place)를 나타내는 토포스(topos)의 합성어라고 한다. 1516년에 영국 사상가이자 정치인인 토마스 무어가 쓴 ‘유토피아’라는 책에서 처음 만들어진 조어다. 이것이 16세기부터 시작된 공상적 공산주의 작가들에 의해 유행되었는데, 원래 유토피아는 ‘아무 데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곧바로 ‘이상국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 김일성종합대학 성자립 교장과의 설전 - 성 교장은 유명한 독립투사 성시백의 아들이다. 그는 도울과 만나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한 것이 주체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하는 관점과 입장을 밝힌 것이 주체철학이라는 주장이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스스로 자기 운명을 계척해 나갈 수 있다. 그런 신념을 담보하는 위대한 사상무기를 근로인민대중에게 안겨준 것”이라고 주체사상을 칭송했다. 이어 “우리는 조국을 위한 철학을 해야 한다. 당이 없으면 사회적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수령과 인민은 하나이며,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 틀 안에서 해석할 수 없는 독창적 사상”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나도 남쪽에 가서 도올 선생과 같이 주체철학을 강의하면 사람들이 알아들을 까요”라고 묻자 도올은 “인기만점일 것”이라며 “이렇게 교류가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듣고 있던 유시민도 정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 안동춘 조선작가동맹 위원장과의 교감 - 우리가 북한 사람들이 자유로운 사고 그 자체를 못하고 있다고 단정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저자는 안 위원장과의 대화 후 토로한다. 자신이 목도한 북한 인민들은 자신의 삶의 난관을 극복해나갈 저력이 있었고, 지식인들은 정신의 비상(飛翔)을 갈망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그리고 시진핑

* 절대정신이 남북미 세 지도자를 끌어모았다? - 헤겔 철학이 주장하는 바 ‘절대정신’이 세계사적 조감 속에서 세 사람을 끌어모았다고 생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 사람이 조선대륙이라는 무대 위에서 만난 것이 너무도 절묘하다고 감탄한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3인이 엉뚱한 짓을 하는 듯이 보여도, 결국은 절대이성의 어떤 합목적성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 트럼프는 ‘이단아’ 관상 - 트럼프는 이단아지만, 미국 역사에 있어서는 새로운 요소라고 평가한다. 순수한 장사꾼인데, 장사꾼의 특징은 손해볼 짓은 안한다는 것이라며 이익을 챙기는 것이 최우선으로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대신 도덕적 허세는 없다고 강조한다. 민족주의적 고립주의는 있어도, 제국주의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유시민은 이를 받아 “세계 냉전시대의 최종적 마무리 단계에서 한국 역사의 주요한 함수로 등장한 이단아”로 정리한다.

* 문재인은 청기(淸氣)가 도는 사람 -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는 보기 힘들게 순수하고 순결한 인간이라고 평한다. 맑은 청기(淸氣)가 도는 사람, 타인에게 보여지는 ‘집권욕’에서 생기는 탁기가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 정의감에 헌신하는 인간이라는 평이다. 그의 때묻지 않은 순결성에 관해 토를 달 수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 대한민국 민중의 촛불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대통령이므로, 촛불의 소망을 구현하지 않으면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촛불혁명’이라고 칭하면서, 이것은 왕정복고의 가능성을 뿌리로부터 멸정시킨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유시민도 “촛불혁명은 왕정적 가치관을 가진 정치적 지도자를 국민의 자각적 의식 속에서 근원적으로 제거한 사건”이라고 거든다.

* 김정은의 관상 - 스위스 학교 유학 시절 지도교사였던 시모네 쿤의 말을 빌어 “정말 무엇이든 열심히 달려드는 노력가였으며, 지기 싫어했다”고 회고한다. 수학 과학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며, 과학기술문명에 있어 조국의 수준이 뒤떨어져선 안된다는 선진의식을 갖게 된 것이 유학의 성과라는 평가를 전한다. 중국 옛 인물을 빌어, 김정은을 궁정의 암투 속에서 자란 ‘양강’ 스타일보다는 몽골초원에서 순박하게 자라난 ‘곽정’ 스타일이라고 평한다. 유시민은 “그래도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명분을 획득한, 젊은 백두혈통의 후계자로서 그 동안 그의 능력과 조직을 과시하는 많은 일들을 효율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평가는 있는 것 같다”고 거든다.

* “중국을 3류 국가로 만드는 시진핑” - 시진핑이 세계지성인들의 도덕적 기대감을 무산시킬 줄 몰랐다고 저자는 실망해 한다. 2018년 3월의 제13회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개헌을 감행해 영구집권의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격대지정’의 아름다운 전통도 파기해 버렸고, 7상 7하(67세 이하는 유임, 68세 이상은 은퇴)라는 세대교체의 틀도 깨버렸다고 비판한다. 중국을 3류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도올이 생각하는 남과 북, 그리고 통일

* 도올의 남북한 비교 - 북한은 공산주의, 남한은 반공이라는 참으로 슬픈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북한에는 자기이념이 있는데 남한에는 자기이념이 없고 타자에 대한 무조건 반대만 있다고 평가한다. “우리 같은 무시무시한 반공국가에서는 사상가는 물론 과학자도 탄생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반공에서 완전히 해탈된다면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창조적으로 변모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는 “북한은 일사불란한 국가의 비전이나 리더십 아래 질서있게 움직여가는데, 남한은 매우 어지럽다”고 비판한다. 남한에서 하는 행태가 너무 비주체적이고, 자신 없고, 굴종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과도하게 주체적이고, 남한은 과도하게 비굴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6.25 전쟁의 발발원인은 양쪽이 똑같이 책임이 있지만, 아무래도 북한의 김일성 박헌영이 주도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는 전후맥락은 1950년의 사태 추이에 관한 소련 중공 공식 문헌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며 오해 받을 수 있는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북한은 냉전 이후 구축된 사회주의 독재국가 중에서 내부 분열에 의해 붕괴되지 않고 아직도 건재한 유일한 나라라는 아슬아슬한 평가도 내놓는다.

* 경수로만 제대로 지원되었어도? - 북한은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 핵 동결의 대가로 1000MW급 경수로 핵발전소 2기와 연간 중유 50만톤을 제공받기로 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완전 복귀와 모든 핵 시설의 사찰 허용, 핵 활동의 전면 동결 및 기존 핵시설의 궁극적 해체를 약속했다. 저자는 그럼에도 미국이 부시 이후 9.11테러를 계기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해 버리고 기존 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아직도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지도 않은’ 천안함 침몰사건을 빌미로 5.24 대북제재조치를 발동하고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을 이유로 무조건 개성공단 폐쇄를 명령했다고 비판한다. 1995년의 경수로사업만 서방세계가 확고하게 밀어주었다면, 북한은 결코 오늘날 ‘핵 빌드업’의 험로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연 그랬을까? 

* “우리 언론도 왜곡보도” 주장 - 남북한 문제를 우리는 우리 언론의 ‘왜곡보도’에 따라 무조건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 있는 듯이 보도하고 세뇌하고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도 신의를 버렸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상대방을 궁지로 몬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까지 말한다. 전형적 양비론으로 해석될 만한 위험한 언급이다.

* 도올이 말하는 통일 - 그에게 통일이란 ‘무리하게라도 우리가 주체적으로 진행시켜 나가야 할 과제상황’이다. 남과 북이 도망가서 애를 낳으면 세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이 주체적으로 평화협정을 맺고 온 천하에 “전쟁의 공포에서 우리 역사는 벗어났다”고 새로운 케리그마를 선포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보수정치인들이 트집잡는 가장 썪어빠진 언어가 ‘퍼준다’는 말”이라며, 북한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북한에 투자하는 것은 ‘퍼주기’가 아니라 ‘퍼받기’”라며 오히려 보수진영을 공격한다. 쌀을 북한동포에게 주고 희토류 같은 북한의 자원을 우리가 트레이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 하겠느냐고 말한다. 통일비용보다 분단 비용이 훨씬 더 엄청나게 많다고 단언하면서, 남북한의 통일은 돈이 들지 않으며 특히 우리가 버는 것이 더 많으면 많았지 손해 볼 일이 없다고 말한다. 

** 도올의 유시민 평가 

유시민의 생애는 철저히 앙가쥬망을 실천한 삶이라고 극찬한다. 존재의 가치를 사회공동체 프로세스 속에서 구현하면서 확인하고 수정하고 또 확대해 온 삶이라고 칭찬한다. 유시민의 장점은 프락시스(praxis, 사회적 실천)를 철저히 이론화하고 학문적 도구를 활용해 논리적인 구조물들을 계속 창조해 왔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유시민은 꾸준히 공부하며, 합리적 이성의 공구들을 매우 날카롭게 단련해 왔다고 말한다. 유시민에게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은, 한국정치사의 장면장면에 대한 이론적 숙지의 깊이에 관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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