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 강남좌파2 > 강준만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19-11-22 07:30 수정일 2020-05-29 11:40 발행일 2019-11-2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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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강남 좌파, 우리 사회를 옳게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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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는 스스로를 강남 좌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진보세력에게 늘 아픈 비판을 쏟아낸다. 그의 주장과 비판은 매우 논리정연하고 매섭다. 수년 전 ‘강남좌파’의 패러다임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 진보 진영의 반성을 이끌어냈던 저자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다시 강남좌파를 소환했다. ‘좌파는 수구세력이 입지를 넓히려고, 나머지를 한쪽으로 밀어붙이는 명칭일 뿐’이라는 세종대 이봉수 교수의 기고로 글을 시작했지만, 저자는 우리 사회 강남좌파들에 대해 준엄한 질타와 꾸짖음을 시종일관 거침없이 퍼붓는다. 정권을 잡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386 운동권 세대들에게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는다. 이들이 변하지 않으면, 진보 역시 미래가 없다는 주장이다. 기득권 강남좌파, 특히 정부 사이드에 있는 이들이 제발 저자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 우리 사회의 강남좌파들은 누구?

* 한국엔 ‘강남좌파’, 미국엔 ‘리무진 진보’ - 한국의 강남좌파와 유사한 개념으로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프랑스의 ‘고슈 카비아(캐비아 좌파)’,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가 있다. 또 독일의 ‘살롱 사회주의자’, 캐나다의 ‘구찌 사회주의자’, 호주의 ‘샤르도네 (고급와인) 사회주의자’도 유사한 개념이다.

* 고위공직자 절반이 상위 5% 부자 - 2014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순자산이 9억원 이상인 가구는 5.1%에 불과하다. 2015년 3월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 정부공직자윤리위가 관보에 공개한 고위공직자 2302명의 정기 재산 변동 신고 내역을 보면, 순자산 9억원 이상이 1100명으로 47.8%에 이른다. 법조계는 71.3%(144명/202명), 국회의원은 62.3%(182명/292명), 행정부는 43.1%(771명/1790명)에 이른다.

*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갖고 자학하는 한국인들 - 우리는 국민 대부분이 비현실적으로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갖고 자학하는 수준이라고 저자는 일갈한다. 2018년 근로자 평균 연봉이 3634만 원이며, 연봉 1억원 이상이 49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1%다. 소득 상위 10%(10분위)의 연봉 하한선이 6950만원, 상위 10~20%(9분위)의 평균 연봉 하한선이 5062만원이다. 하지만 연봉 5000만원 이상 사람에게 상위 20%에 속한다고 말해줘도 믿지 않는다. 가구 연소득으로 1억원 언저리면 상위 20%인데 이를 인정 않고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사실도 부인한다. 사실상 상위 20%에 속하는 좌파는 모두 강남 좌파로 보아야 한다고 저지는 말한다.

◇ 불평등 구조 ‘1대99’가 아니라 ‘20대 80’

* ‘20대 80’의 사회 - 2017년 국세청 귀속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보면, 부동산 양도차익과 금융소득 등 대표적인 불로소득이 135조 6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나 증가했다. 거의 대부분 우리 사회 상위 10%의 몫이다. 개인별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배당 및 이자소득 33조 4000억원을 살펴보면, 상위 10% 몫이 각각 93.9%와 90.8%에 이른다. 한국이 1대 99의 사회가 아니라 10대 90, 더 나아가 20대 80의 사회를 기본 프레임으로 삼아 개혁에 임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상위 1%만을 겨냥한 개혁은 그 프레임 자체가 착각이거나 위선에 기반하고 있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20% 개혁이 1%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9%가 스스로 양보하거나 양보를 강요당하는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1% 개혁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1% 비판에 집중하는 ‘진보 코스프레’ - 진보 정권은 학벌주의 경향이 강하다. 학벌은 돈 많은 보수 엘리트 보다는 돈이 비교적 적은 진보 엘리트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적 불평등을 외면한 진보는 진보가 아니며, 그것은 ‘진보 코스프레’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자신도 포함되는 19%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1% 비판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저자도 가끔 저지르는 ‘진보 코스프레’의 정체라고 실토한다.

◇ 진보의 위선, 그리고 무책임

* 위선에 둔감한 진보 -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했다. 하지만 소통보다는 불통에 가까웠다고 저자는 냉정하게 평가한다. 더 큰 비극은 그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리라는 점이라고 악평을 한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소통을 잘한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이지만 과욕이라고 비판한다. 5년 임기의 정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일부러 악역을 맡아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청와대부터 여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도덕적 면허효과’로 인한 부도덕 - 이미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나쁜 일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심리, 즉 ‘도덕적 면허 효과’가 386 운동권에 존재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쓴 윌리엄 맥어스킬은 “도덕적 면허효과는 사람들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일종의 ‘인정 투쟁’이나 ‘구별 짓기 투쟁’과 다른 아니다. 이런 도덕적 면허 효과가 작동하는 데에는 내성 착각(introspection illusion)이라는 보호막이 작동한다.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알아”라는 식이다. 이런 도덕적 우월감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인식과 연결된다.

* 권위주의에 저항했지만 자신들도 권위주의에 - 김정훈 심나리 김항기는 ‘386 세대 유감’이라는 책에서 이른바 ‘386 DNA’를 논했다. 386 운동권 세대는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했을 뿐, 민주주의를 즐겁게 향유하는 법을 익히진 못했다고 적었다. 운동권은 거시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미시적으론 권위주의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다고 저자도 동의한다. 개혁을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하고 민생 문제 마저도 민주화 투쟁 모델을 따르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평가다. 고차 방정식을 풀 수 있는 고급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들은 ‘코드’가 맞지 않아 발탁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한다.

* 도덕적 우월감이 진보를 죽인다 - 소통을 통해 지지 기반을 넓혀나가기 보다는 ‘적 만들기’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선동함으로써 자신의 확실한 지지기반을 굳히려는 정치를 한다. 저자는 이런 행태를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라고 비판한다. 상대편이 박근혜 국정농단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개판’을 쳐주길 기대해선 안된다고 일갈한다.

◇ 조국 사태가 남긴 교훈

*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였다? - 여권은 검찰의 조국 가족 수사에 대해, 심증 하나 만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공의 적으로 매도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소통하는 대통령’의 원칙에 충실했더라면, 이 사태는 8월에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고, 그리 되었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국 임명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2배 이상 많았다는 것은, 문재인 지지자들의 상당수도 찬성에 가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조국 사퇴 직후 리얼미터 조사에선 ‘잘한 결정’이라는 긍정 응답이 62.6%로, ‘잘못된 결정’이라는 부정 응답(28.6%)의 2배 이상이었다. 조국 수호자들이 결국 문재인 수호자로 전환해 조국의 사퇴를 승인한 것이라는 얘기다.

* 여권은 진정 검찰개혁을 원했는가? - 검찰 개혁이 그토록 중요한 과제였다면, 탄핵 연대 에너지가 충만했던 2017년 개혁의 골든 타임을 현 정권은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그리 하지 않았다. 문 정부 검찰 개혁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특수부 해체와 관련해, 오히려 특수부 권한을 강화시키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규모를 2배 가까이 늘리는 등 반대로 향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적폐 청산이 이뤄졌는데, 그 때마다 검찰이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것이 누적되어 지금의 검찰의 온갖 병폐를 키워온 것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 피의사실 공표를 이용해 먹은 좌파정부 - 피의사실 공표를 이용한 여론전도 박근혜 국정농단 응징과 적폐 청산의 주요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로 더 큰 정치적 이익을 본 쪽은 보수 우파가 아니라 진보개혁 세력이다.

* 리처드 리브스의 ‘유리바닥(Glass Floor)’ -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 기득권층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통해, 사회 경제적 신분의 하락을 막으려 만들어 놓은 방지 장치를 ‘유리바닥’이라고 통칭한다.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제도와 인맥, 연줄이 중요한 인턴제도와 같은 기득권층의 ‘기회 사재기’가 계층 이동을 막는 유리바닥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성행하는 기회 사재기 방식 중 하나가 조국 사태 때 불거진 이른바 ‘스펙 품앗이’였다. 저자는 이런 관행이 교수 사회에 팽배했다고 전한다.

◇ 문재인 정부의 패착, 그리고 과제

* 최저임금제 & 주 52시간제 -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부작용에 대한 만반 준비를 갖춰야 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당위’만 강조하는 우를 범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진보적 현실주의로 가려면 정규직의 양보가 전제되어야 했는데, 그걸 과감하게 공론화하지 못했다. 시간강사법은 교원 지위 부여와 임용기간 법적보장, 4대 보험 적용 등 좋은 법률이었지만 결과는 강사 대량 해고 사태였다. 로스쿨도 비싼 비용 때문에 경제적 취약계층 진입을 가로막는 결과만 낳았다. 2019년 기준으로 로스쿨 학생의 54.1%가 월 소득 930만원 초과인 소득 8~10분위 고소득층 자녀들이다. 이런 부작용이 예견된 조치들을 온갖 반대를 무릎쓰고 악착같이 도입한 주체가 진보 정권이다.

* 진보의 ‘의제 대전환’ 시급 - 김경률은 “조국 사태로 진보진영은 분열한 게 아니라 몰락했다”고 탄식했다. 진보 진영의 권력지향적 태도, 무비판적 사고가 민낯처럼 드러났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 기간 동안 더불어민주당 역시 겉으론 일심동체인 것처럼 보였으나, 진실을 말하자면 ‘집단 사고’를 강요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저자는 파악한다. 이에 진보의 의제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진보의 우선적인 사명은 불평등 해소나 완화인데, 현재 우리 정치는 불평등을 약화하라고 존재하는 듯 하다고 비판한다.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초심을 되새겨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20대에게 연대책임을 묻지 말라 - 20대가 갖고 있는 ‘공정’ 개념의 핵심은, 잘못된 구조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에 대한 연대책임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진보는 북한에 대한 20대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것을 이병박 박근혜 정권의 교육 탓으로 돌린다. 문재인 지지율이 20대 남성들에게 낮은 이유도 전 정권의 잘못된 학교교육 때문이라고 성토한다. 저자는 “굳이 반박할 필요조차 없는 ‘실언’”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이것이 진보파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말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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