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행복한 나라, 좋은 정부> 박세정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19-11-03 16:59 수정일 2020-05-29 11:43 발행일 2019-11-0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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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선진국인데 국민의식과 정부 시스템은 여전히 개도국인 한국…
겉은 선진국인데 국민의식과 정부 시스템은 여전히 개도국인 한국…
정부

< 총평 >

우리나라는 분명히 선진국이다. OECD 회원국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국민들은 행복해 하지 않고 정부나 사회적 인프라 등에 관한 신뢰는 거의 바닥이다. 이 책은 명실상부 선진국인 덴마크와 스위스는 물론 아직 개도국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코스타리카 등의 사례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준엄하게 되묻는다. 특히 분명히 우리보다 한찬 처지는 개도국임에도, 국민 의식이나 정부 시스템으로 보면 우리보다 확연히 앞서는 선진국이라 할 코스타리카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는 특히 이런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정치’의 힘과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치력이 좀처럼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안타까와 한다. 작년 말에 출간 된 책이지만, 이후 별로 달라지지 않은 우리 현실을 안타까와 하는 마음으로 뒤늦게 일독을 권한다.

◇ ‘소통’과 ‘배려’의 나라 덴마크

* ‘다툼’이 없는 나라, 덴마크 - 길거리에서든 직장에서든, 국회에서든 모두 ‘평화’ 그 자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남이 불편해 할 행동을 하지 않는다. 교육 현장에서 강조하는 것도 ‘격려’와 ‘자극’이다.

* 1인 1실 덴마크 교도소 - 덴마크는 죄수보다 교도관이 더 많은 나라다. 재소자 1인당 방 하나씩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신 하루 몇 시간씩 자유시간을 주어 서로 어울려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감옥이 우리나라의 작은 원룸 아파트급이다. 재소자들은 언제든 가족들을 볼 수 있고 면회시간도 시간 제약이 없다. 한국에선 4~5평 공간에 많게는 십 여명이 함께 생활한다.

* 고개 숙이는 것을 굴욕으로 아는 덴마크 - 덴마크에선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There is no bowing and scraping in Denmark)’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를 ‘굴욕’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덴마크 국민소통의 날(folkmodet) - 6월 중순 약 5일 동안 작은 섬에서 총리부터 각부 장관, 국가및 지방 정치인들이 국민과 함께 모여 대화하는 행사를 말한다. 총리가 당해년도 정책과 향후 정국 구상을 밝히고 국민들과 문답 시간을 가짐으로써 ‘소통의 정책’을 편다.

* 협회의 나라 덴마크 -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협회를 보유한 나라가 덴마크다. 그만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임을 결성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치의 기반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정치 참여를 촉진케 한다.

* 근로자를 위한 ‘스트레스관리사’ - 근로자를 아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스트레스관리사의 존재다. 2015년 사민당 정부가 야당과 공동으로 덴마크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2020년까지 20% 이상 줄이겠다는 사회적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각 기업과 행정기관에 스트레스 관리사 두고 2년 마다 직원들을 설문조사 해,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하고 이에 근거해 스트레스 감소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 토록 했다.

◇ ‘개도국’이지만 ‘선진국’ 같은 코스타리카

*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코스타리카 - 저개발 국가 중에 상대적으로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나라가 코스타리카다.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고,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 원칙이 적용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줄이고, 노후보장을 위한 연금제도를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행복도’ 높은 나라 부탄도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제공되는 개도국이다.

* 군대 폐지하고 교육과 복지에 투자한 코스타리카 - 1948년에 그동안 권력 찬탈의 수단이었던 군대를 폐지했다. 여기서 생긴 예산 지원 여력을 교육과 복지에 투입했다. 군대 폐지 후 군부를 등에 업은 혁명이 한 차례도 없었을 정도로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심지어는 대통령 재임까지 금지했다가 위헌 결정이 나는 바람에 ‘연임 금지’ 규정으로 수정하는 등 권력의 장기화를 막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도 구비했다.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임명한다. 해임하려면 국회 3분의 2로 의결토록 하고 있다.

* 근로자 만족도도 한국 앞서 - 국제노동총연맹(ITUC)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의 노동자 권리지수는 5등급 중 2등급에 해당한다.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1등급이며, 우리는 최하위인 5등급이다. 중국이나 짐바브웨,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베트남과 동급이다. 스웨덴 유니버섬의 평가 자료에 따르면 코스타리카 근로자들의 행복도는 조사 대상 57개국 중 3위다. 우리는 이 조사에서 49등이다. 코스타리카는 ‘근로자를 기계화해선 안된다’고 헌법에 명시해 놓고 있다.

* 코스타리카도 최저임금 차등화 - 국민소득은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시간 당 최저임금은 약 3000원 정도로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단순 근로자와 고력자 기술자들의 최저임금이 차등화되어 있다.

◇ 협의로 운영되는 정부 시스템 ‘스위스’

* 대통령이 7명인 스위스 - 행정부를 대표하는 연방위원회 위원 7명이 각자 1개의 중앙부처를 관리 감독한다. 이들 중 1명을 매년 선출해 대통령이라는 역할을 맡긴다.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고, 대부분 결정은 7인이 합의해 이뤄진다.

* 스위스의 1:12 법안 - 2012년 스위스 의회가 이 법안을 상정했다. 최고 경영자와 가장 하위직의 급여 차이를 12배 이내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의회는 의원들의 토론만으로 표결에 부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사업가 정신이 위축되고 다국적 기업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무려 3년 이상 지속된 토론을 거쳐 결국 부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성숙한 국민의식을 보여 주었다.

* 청렴국가의 행복도가 높은 이유는? - 청렴한 나라의 국민들이 행복감을 더 느끼는 이유를 저자는 “무엇보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는 나라에선 이런 상식적인 룰이 통하지 않다는 얘기다.

◇ ‘선진국 한국’의 우울한 현주소

* 근로자 건강 안 챙기는 한국 - 스위스 국제경영원(IMD) 통계를 보면, 한국은 근로자의 건강이나 안전을 얼마나 잘 챙기는가 하는 평가에서 조사 대상 61개국 중 56위에 불과하다.

* 존중받지 못하는 한국의 직장 문화 - 국제기관들이 평가하는 한국의 행복도 순위를 보면 대체로 60등 내외다. ‘어제 얼마나 웃었나?’, ‘얼마나 존중받고 있나?’ 등의 질문에는 122등까지 떨어진다.

* 갈등과 다툼의 ‘한국병’ 근원은 ‘정치’ - 우리 정치 제도는 근원적으로 다툼을 유발하는 구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정과 비리를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부정과 비리를 따라하게 만들고 있다고 개탄한다. 서재필은 일찍이 “우리 사회의 시기와 미움, 다툼이 대표적인 한국병”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관리자 신뢰도 최악 한국 - IMD(국제경영원)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관리자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도는 61개국 중 61위로 꼴찌다. 1등은 덴마크다. 직원들을 즐겁게 해주고 철저히 보호해 주려는 정신이 우리나라 직정에선 결여되어 있다는 얘기다.

* 해외 사고시 한·미·일·중 국민의 대처 유형 - 해외에 나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할 경우 나라 별로 사람들의 대처 방법이 틀리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주위에 있는 중국 사람들을 데리고 와 인해전술로 해결하고, 일본 사람들은 돈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미국인들은 자기 대사관에 알려 해결하려 한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도 저도 안되어 결국 자기 스스로 해결한다. 우리나라 해외 공관의 자국민 서비스가 얼마나 형편 없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비판이다.

◇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나

* 국민 설득 외면하는 대통령 -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한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치려 했다. 핵심 내용인 현행 대통령을 유지하되 임기를 5년 단임에서 4년 연임으로 하는 곳이 골자였다. 문제는 이런 중차대한 이슈에 진지한 토론화 한번 변변히 없었다는 점이다. 국민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작업이 전무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신념, 비전과 철학을 제대로 먼저 밝혔어야 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불가능의 대통령직(impossible presidecy) - 미국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다. 현대사회는 어떤 대통령이 나와도 홀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 국회 권능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행정부에 속한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세계적으로 감사원이 행정부에 속해 있고, 대통령이 감사원장을 임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대통령에 예속되어 있고 대통령이 임명토록 되어 있다. 대통령에 정기 보고도 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구도로는 감사원이 대통령 부정이나 비위 사실을 조사하고 공개하기 불가능하다.

* 공무원 직급 폐지 검토를 - 9급부터 1급까지로 되어 있는 공무원 직급체계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신 공무원이 수행하는 업무를 성격별로 유형화해, 직무 중심으로 행정인력을 채용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7급 공무원입니다”가 아니라 “저는 부산시청 회계 담당 공무원입니다”라는 자기 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근본적 교육개혁 필요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진했던 교육 개혁이 모두 실패한 이유는 단순히 교육제도만 개혁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교육을 둘러싼 사회 환경적 요인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직업 간의 격차다. 덴마크는 버스기사나 대학교수, 중소기업 근로자나 공무원 간에 급여 편차가 거의 없다. 고임금 직업에 대한 특권도 거의 없다. 기를 쓰고 공부해 힘든 직업을 갖지 않으려는 이유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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