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때의 광장과 지금의 광장

김윤호 기자
입력일 2019-10-06 11:06 수정일 2019-10-06 16:48 발행일 2019-10-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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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지난 2016년 말에 이어 또 다시 국민들이 광장에 나왔다. ‘박근혜 하야’라는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그때의 광장과는 달리 지금의 광장은 ‘조국’을 두고 두 쪽으로 나뉘어 각기 촛불과 태극기를 쥐고 진영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진영이 나뉜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각자의 지향은 다를 수밖에 없어서다. 그때의 광장은 보편적인 국민의 기대와 뜻을 저버린 박근혜 정권이었기에 이례적으로 진영을 불문하고 나란히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제 역할을 못해 그때의 광장에 편승했던 무능한 정치권이 분열된 지금의 광장을 두고는 중재는커녕 갈등만 키우고 있다. 여야가 서로 반대 진영 광장에 대해선 ‘관제’나 ‘동원’이라고 폄하하고, 자기 진영 광장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기반으로 이용하면서다.

이런 지적에 여야 정치권은 각기 반발할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 각자의 광장에 나온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갈대 같은 민심의 비위만 맞추는 위정자라면 애당초 대의민주주의 아래 권력을 위임할 필요가 없고, 정치의 존재의미마저 사라진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그 권력을 이성적으로 올바르게 쓰는 건 위정자의 몫이다.

고대 로마 제국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유명한 루키우스 세네카는 정치에 대해 ‘국민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한다’고 했다. 이 말을 증명하듯 제자인 네로 황제는 포퓰리즘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다, 재정부족에 시달려 점차 떨어지는 지지와 커지는 반란군의 압박을 못 이겨 자살을 택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만 해 무너진 박근혜 정권을 겪고서는 각자의 지지층 따르기에만 골몰하는 지금의 정치권이 곱씹어야 할 역사다.

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uknow@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