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역사 속 바보들의 행진에 빗대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경고 ‘독선과 아집의 역사’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0-02 07:00 수정일 2019-10-02 11:31 발행일 2019-10-0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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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퓰리처상 수상자 바바라 터크먼 저서 ‘독선과 아집의 역사’, 자멸을 초래한 어리석은 통치자들의 역사를 ‘3000년 동안 이어진 바보들의 행진’(The March of Folly)이라 표현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이슈로 떠들썩한 대한민국,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로 유혈이 낭자한 홍콩, 탄핵이슈 美 트럼프 대통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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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벌써 두달여를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이슈로 떠들썩하다. 조국 장관의 딸에서 시작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아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아들 처벌과정 문제 등 특권계층에 유리한 진학과 취업 그리고 의혹들이 줄줄이 불거졌다.

9월 들어서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삭발 릴레이를 감행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진두지휘하는 조국 장관 수사는 연일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국 장관 사퇴의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지난 주말엔 도를 넘은 조국 장관 일가 수사에 ‘무소불위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무려 4개월 넘게 격렬한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로 유혈이 낭자한 홍콩은 어떤가. 관광객으로 넘쳐나던 홍콩의 거리에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경찰이 쏜 최루탄과 물대포, 중국 정부를 독일 나치에 빗댄 ‘차이나치’라는 문구가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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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터크먼의 저서 ‘독선과 아집의 역사’는 ‘다른 모든 과학은 진보하는데 왜? 정치만은 옛날 그대로일까?’라는 질문으로 현대의 통치자들, 정친인들, 권력자들에게 준엄하게 경고한다(사진=연합, 각사)

2014년 9월 하순부터 79일 동안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던 홍콩의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 5주년 기념집회에서는 교통수단 바닥에 깔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오쩌둥(毛澤東)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자의 초상화를 짓밟고 지나가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적 라이벌의 부패 혐의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이 주가 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탄핵’ 논의에 시달리고 있다.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바라 터크먼(Barbara W. Tuchman)의 저서 ‘독선과 아집의 역사’ 부제인 ‘다른 모든 과학은 진보하는데 왜? 정치만은 옛날 그대로일까?’에 꼭 들어맞는 상황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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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과 아집의 역사|바바라 터크먼 지음(사진제공=자작나무)

지난 3000년 동안 등장해 자멸을 초래한 어리석은 통치자들, 정치인, 권력자들을 분석한 책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 로봇이 등장하고 가상현실(VR)과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도 정치는 어째서 늘 혼란스러운가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국가의 미래와 국민 염원에 반하며 자멸을 초래한 어리석은 통치자들의 역사를 ‘3000년 동안 이어진 바보들의 행진’(The March of Folly)이라 명명한다.  영문 원서의 제목이기도 한 그 행진을 주도했던 ‘바보들’을 트로이 전쟁,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 대영제국이 식민지 미국을 잃은 미국독립전쟁, 베트남전쟁 등 네 부류로 나눈다.그 네 부류에 해당하는 사례는 ‘국익을 무시한 오만한 통치자들’ ‘아둔함의 원형, 트로이 목마’ ‘개혁보다는 타락을 택한 르네상스시대의 교황들’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베트남 전쟁’ ‘처절한 패배의 씨앗, 세 대통령의 독선’이라는 제목의 5개 파트에 나눠 담았다.

첫 번째 파트 ‘국익을 무시한 오만한 통치자들’에서는 정치인들의 ‘독선’에 대해 얘기한다. 수상한 목마를 성내로 끌어들인 트로이의 지배자들, 식민지 아메리카와의 평화 보다 억압을 택한 조지 3세 치하의 영국 내각,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카를 12세·나폴레옹·히틀러의 러시아 침공, 아스텍 왕국 황제 목테수마의 굴복, 개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장개석 등 ‘악정’의 원인이 되는 네 가지(폭정과 압정, 야심, 무능 혹은 타락, 독선 또는 아집) 중 독선에 집중한다.

책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등장하는 독선의 세 가지 기준부터 그 조건에 부합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도탄에 빠뜨린 솔로몬 왕의 아들 레호보암, 무어인의 침략을 야기한 스페인의 분열, 위그노교도를 박해한 루이 14세, 지도력이 충분했음에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샤를 10세, 독일을 파멸시킨 무제한 잠수함전, 조급증으로 발발한 진주만공격 등 우둔함과 독선이 부른 비극적인 역사 뿐 아니다. 
역사상 가장 현명한 통치자 솔론, 최고의 지도자 조지 워싱턴, 암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상식과 용기로 시책을 이끈 사다트 대통령 등 희귀한 성공적인 지도자들에 대해도 언급하며 이를 ‘희귀 사례’ 혹은 ‘반짝 등장’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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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파트부터는 3000년 동안 이어진 ‘바보들의 행진’ 세 가지 부류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저자는 신과 인간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트로이의 목마는 ‘아둔함의 원형이자 무지와 어리석음의 상징’이라고 표현한다. 

친척을 대거 등용한 권력정치의 화신 식스토 4세, 타락한 아들을 감싼 전쟁 마니아 인노첸시오 8세, 돈·여자·광란으로 얼룩진 알렉산데르 6세, 전쟁광 율리오 2세, 흥청망청 면죄부까지 판 레오 10세, 부관참시를 당한 클레멘스 7세 등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은 개혁을 거부하고 권력을 앞세워 쾌락과 향락에 빠져 들어 민중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케네디의 판단 착오, 존슨의 전쟁 광기, 닉슨의 아집으로 발발한 베트남 전쟁은 미국 대통령과 정책결정자들의 아둔함이 귀결된 결과임을 두 장에 걸쳐 설명한다.
책에서 말하는 ‘바보들의 행진’은 극과 극의 이념 대립 혹은 편향, 선악 혹은 편 가르기 식의 이분법적 가치 판단, 국가와 국민이 아닌 사익 추구, 대중에 영합하고 공모한 상호 증오감 확대 등으로 점철된 역사다. 어쩌면 이 현상들은 낯설지가 않다. 지금의 정치 행태에서도 만져지는 것들로 책의 첫장에 인용된 ‘미래에도 이미 내가 들은 것과 똑같은 주제가 다시 울려 퍼지리라’(조지프 캠벨 ‘신의 가면-원시식화학’ 서문)라는 문구 그대로다. 
이성의 배척, 지나친 선입관과 고정관념, 권력욕과 소수에 몰린 과도한 권력, 사고의 정체 혹은 정지, 귀를 닫아버리는 아집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시작되는 ‘바보들의 행진’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는 지난 역사에서 수도 없이 증명해왔다. 
그리고 그 비극적 결말을 부르는 원인들은 지금 이 시대에도 난무하고 있는 정치적 부유물들이기도 하다. 결국 저자는 3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바보들의 행진을 통해 국민의 복지와 편의, 염원에 어긋나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정책이 불러올 비극 그리고 국민들을 혼란과 도탄에 빠뜨린 전세계 정치인들에 대해 경고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