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암호화폐라면 몸사리는 은행들

김상우 기자
입력일 2019-08-07 15:07 수정일 2019-08-07 17:49 발행일 2019-08-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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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산업IT부 차장

실명계좌를 지원하는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이 최근 해당 은행과 재계약을 모두 체결했다. 이번 4대 거래소들의 재계약 체결 여부는 업계 안팎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지난 7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총회를 통해 회원국들의 암호화폐 건전성 확립을 주문한 바 있다. 이번 실명계좌 4대 거래소 재계약 체결 여부가 우리 정부의 FATF 권고안 이행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판단이었다. 

시중 은행들이 4대 거래소와 모두 재계약을 당장의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업비트와 계약을 맺고 있는 기업은행의 경우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규 회원에게 실명계좌를 터주지 않겠단 입장을 고수했다. 차단을 고집할 뚜렷한 명분은 없어 보이나 괜한 짓을 했다가 정부의 불호령이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몸조심이 아닐까.

신한은행은 최근 코빗의 입출금의 중단과 지원을 반복하면서 회원들이 큰 불편을 겪은 바 있다. 보이스피싱 의심 사례로 인한 방지 조치라는 설명이나 연달은 입출금 중단은 거래소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농협은행도 과거 빗썸의 재계약 상황에서 양측의 갈등이 크게 불거진 바 있다. 심기를 건드린다면 이전의 전력을 문제 삼아 당장이라도 계약 관계를 끊겠다는 강경함이 도사리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은행들 다수가 암호화폐 거래소와 일정한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화폐에는 열광 그 자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행보는 무슨 연유일까.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는 ‘관치금융’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혁신을 논하면서도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는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짚어봐야 한다. 4차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전통 금융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언제까지 관치금융에 좌지우지될 것인가. 만약 현 정부가 암호화폐 육성론을 폈다면 똑같은 입장을 보여줬을까. 안타까운 상황이다.

김상우 산업IT부 차장 ksw@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