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일동주(韓日同舟)와 ‘지소미아’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19-08-05 14:06 수정일 2019-08-05 14:29 발행일 2019-08-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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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국제부 차장

일본의 경제도발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차분하고 냉철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일간 대립 상황이 여기까지 온 마당에 정부가 핵심 소재 등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예산 등 정책 수단을 총동원키로 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최소한 의미는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한·미·일 안보공조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지소미아’(GSOMIA) 폐기 카드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오는 24일이 시한이지만 당정청 내부적으로는 이미 폐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보를 레버리지로 미국의 중재역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인데 그 효과에 대해 외교가와 미 조야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소미아 폐기는 첨단 정보자산이 많은 일본에는 위협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한미일 안보 공조를 무너뜨려 동북아 역내 미국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밀착하는 아베 우익 정권은 이참에 미국 주도의 동북아전략에서 한국을 ‘패싱’하자고 나올 수 있다.

한미일 안보공조가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최근 한일갈등 국면에서 이어진 중·러 군용기의 독도 영공 유린 사태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서도 확인된다. 정부는 국익을 위해서는 무엇이 최선인지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 해묵은 원한관계라도 공동의 위기상황 앞에서는 서로 돕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서로 원수처럼 여기는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풍랑을 만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도왔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처럼, 국제정세의 냉엄한 현실은 필요하면 ‘한일동주’(韓日同舟)라도 할 수 있다는 유연함이 요구된다.

일본의 경제도발이 전화위복이 되려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감정적 반일(反日)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보다 나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이성적 극일(克日) 정신이 필요하다.

김수환 국제부 차장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