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수출규제, 그럼 ‘한신과 가랑이’가 답인가

김윤호 기자
입력일 2019-07-10 10:03 수정일 2019-07-10 13:33 발행일 2019-07-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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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밥줄’이 위협받자 일본의 강제징용에 대한 공분을 비집고 이른바 ‘실리론’이 제기됐다.

선두주자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다. 7일 마련된 일본 경제보복 긴급대책회의에서 쏟아진 의견들을 종합하면 ‘유치한 반일감정’에 휘둘려 일본을 거스르지 말고 타협하라는 것이다. 무뢰한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한신의 일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수치를 견뎌야 한다는 의미로 흔히 쓰이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에 대한 비판에 대응해 인용하기도 했다.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빌어먹을지언정 국민을 살려야 하는 게 국가의 책무 아니던가.

그러나 한신이 무뢰한의 가랑이 밑을 기어 맞이한 말로가 ‘토사구팽’이라는 점이 걸려 끝내 고개를 젓게 된다. 혹자는 한신이 비참하게 버려졌을지언정 한나라를 세우는 위업을 달성했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청구권 협정을 맺고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토사구팽해 얻은 돈과 국교로 현재의 경제대국이라는 위업을 세웠지 않냐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 청구권 협정이 지금 일본 경제보복의 명분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토사구팽을 당하는 양상이다.

어쩌면 가랑이 밑을 긴 끝에 토사구팽을 맞이하는 건 필연일지 모르겠다. 애초에 일본과의 온갖 조약과 협정을 통한 국교 정상화도 ‘무리한 배상은 전쟁을 낳는다’는 국제사회의 논리를 따라 가랑이 밑을 긴 결과다. 강자의 가랑이 밑과 토사구팽의 악순환 위에 쌓은 모래성 같은 번영, 정말 옳은 길일까.

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uknow@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