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화 '기생충'의 밥과 잠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9-06-13 13:52 수정일 2019-07-21 15:13 발행일 2019-06-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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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문화부 차장

8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영화 ‘기생충’의 미담이 속출하고 있다. 시작은 표준근로계약서를 지킨 대표적인 사례로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 봉준호 감독이 다시 한번 간곡히 정정보도를 부탁했다. ‘브릿지경제’와 만난 라운드 인터뷰에서도 봉 감독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미 수많은 영화들이 2~3년 전부터 표준 근로계약서를 이행해왔다. 그건 선배들 덕”이라며 “내가 표준근로계약서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 민망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발언은 “이미 몇년 간 힘겹게 논의한 분들이 존재했기에 제 현장도 가능했다”는 사실이 배제된 채 ‘기생충’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것마냥 보도되는 데 대한 일침이었다.

영화계 표준근로계약서는 스태프의 장시간 근로나 부당한 처우를 막고자 임금액 및 지급 방법, 근로시간, 4대 보험, 시간 외 수당 등에 관해 노사가 약정한 사항을 담은 계약서를 말한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전국영화산업노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이 협의해 2011년부터 사용을 권고해 왔고 이제는 영화계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20년차 한 영화 제작자는 자신의 SNS에 “영화계를 얼마나 띄엄띄엄 봤으면 순제작비 100억이 넘는 상업영화가 표준계약 지킨 게 뉴스가 되냐?”는 개탄의 글을 올렸다. 이미 업계에서 충분히 지켜지고 있는 근로법이 새삼 ‘기생충’의 유명세에 수면 위로 오르는 현실이 슬펐을 것이다.

이외에도 배고픔을 못 참는 봉준호 감독이 스태프들 밥을 칼 같이 챙기고 아역 배우들의 잠을 우선적으로 챙겼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감독도 사람이기에 때가 되면 배가 고팠을 것이고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것은 언론의 칸영화제 수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사 혹은 거장 감독에 대한 예우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생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쉬움을 토로하거나 ‘아니’라고 하면 ‘안될 것’ 같은 이 대중의 심리를 만들어 낸 것만은 확실하다.

이희승 문화부 차장 press512@viva100.com